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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권새연이라고 합니다. 이 블로그에서 앞으로 예쁜 스킨들과 다양한 정보들을 올리겠습니다^^...

인기녀가 되는 비법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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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엽기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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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초대장 배포 공지]

 

기다리시고 기다리시던 티스토리 초대장이 드디어 왔습니다. 초대장 받아가세요~

 

오늘도 심심풀이로 티스토리에 로그인해 보았는 데 초대장이 6장이나 왔네요~ ^^

 

그래서 티스토리 초대장 6장을 배포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정 기준은

 

1. 마감 시간 이전에 작성되었는지

 

2. 허위 광고,잘못된 정보를 올리지 않을 것인지

 

이렇게 2가지를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초대장 신청은 비밀 댓글로만 받겠습니다.

 

신청 양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블로그 개설 주제 및 목적

 

2.  이메일 주소

 

반드시 이메일 주소를 작성해주시고 비밀 댓글설정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비밀 댓글은 댓글 작성 후에 옆에 보면 Secret 란을 체크해주시면 된답니다~

 

마감은 내일 화요일 오후 4시까지로 하겠습니다.

 

댓글 작성에는 로그인이 필요없답니다~

 

티스토리 가입을 하셔서 즐거운 블로그 생활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posted by 새연(saeyeon)

  첨부파일 다운로드 ->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 mp3(말해줘)

 

[음악파일 다운로드 하는 방법]

 

첨부파일에 있는 파일을 클릭하시면 자동으로 다운받아져요.

다운로드 될 때,숫자가 100까지 채워진 후에 [저장],[다른 이름으로 저장]이 뜹니다.

음악의 이름이 잘못되었다면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클릭하신 후에 올바른 이름을 쓰시면 되요. 음악의 이름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장]버튼을 클릭하세요!

그리고 음악파일의 위치를 변경하고 싶으시다면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선택 후, 다른 폴더 중에 하나를 고르신 다음 Enter나 [저장]버튼을 클릭하시면 자동으로 저장 됩니다~

[음악파일 다운로드 하는 중에 오류가 생겼어요!]

*아래 도움말tip를 참고하세요!

 

[도움말 tip]

Q 음악이 재생되지 않아요! 어떻게 재생시키는 거죠?

A 음악이 재생되지 않을 때 주로 "이 파일을 열 때 사용할 프로그램을 선택해주세요"나 "이 파일을 열 때 사용할 앱을 선택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뜹니다.

메시지가 뜰 때에는 메시지 아래에 나와있는 프로그램 선택메뉴에서 혹시 연결 될만한 음악재생 프로그램을 선택하시면 재생될 수도 있습니다.

 

네이버 TV나 유튜브로 말해줘 동영상 보기

 

네이버 TV에서 말해줘 동영상 보기 [클릭]

 

유튜브에서 말해줘 동영상 보기 [클릭]

 

posted by 새연(saeyeon)

파일:김재중_프로필_사진.jpg

이름

김재중(金在中), Kim Jae-jung, Kim Jaejoong[1])

출생

1986년 1월 26일, 충청남도 공주시

본관

김해 김씨

신체

176cm, 67kg, O형

종교

무종교

학력

중동초등학교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학교
공주정보고등학교 (중퇴)
하남고등학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정보통신학과

포지션

메인보컬, 리드보컬[2]

데뷔

2003년 12월 26일 동방신기[3]

외부 링크

파일:external/c589364d81f897b3acf6c5be1210a87f67411222f8d724666d633b699678cbb5.jpg, 파일:external/b0ea79d73104fb8a7e5c53e1c6dea77022b296458adc250352bc4557940f3c75.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Instagram_logo_2016.svg.png


1. 개요
1.1. 데뷔 전1.2. 데뷔 후
2. 상세
2.1. 비주얼
2.1.1. 외모적 특징2.1.2. 신체적 특징
2.2. 실력2.3. 취미2.4. SNS활동2.5. 팬덤2.6. 친분
3. 활동
3.1. 동방신기 이후의 음악 활동3.2. 콘서트3.3. 팬미팅3.4. 연기 활동3.5. 그 외의 활동
4. 수상경력5. 논란
5.1. 음주운전5.2. 사생팬 폭행 사건5.3. 애국가 가사 실수, 태극기 부착 실수5.4. 출산 발언 논란
6. 트리비아7.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김재중/visualshock.gif
파일:external/res.heraldm.com/restmb_jhidxmake.php?idx=5&simg=201704181110584549166_20170418111157_01.jpg

힐링 보이스[4]

대한민국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 JYJ의 맏형이자 리더이다. 과거 동방신기의 멤버였다. 가방 브랜드 '몰더'의 아트 디렉터이기도 하다.

1.1. 데뷔 전[편집]

1남 8녀 중 막내다. 가족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연예인의 기질이 보였다고. 누나가 젝스키스를 따라서 산 회색 반짝이 버버리 코트를 자기가 입을 정도였으며, 누나가 라디오를 사줬더니 H.O.T 노래를 테이프를 사서 들으면서 가수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수의 꿈을 반대당하고 한번은 짜장면 배달이라도 해서 가수가 되든지 말든지 하라고 했더니 진짜 중국집에 취직하려고 가출했다. 나이가 어려서 중국집에서 일을 시켜주지 않자 신문 배달 일을 구하러 간 곳에서 아저씨한테 이틀을 굶었다고 짜장면을 시켜달라고 해서 짜장면에 밥까지 먹었다고. 흠좀무.

가출 소동 끝에 다섯째 누나의 도움으로 SM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연습생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의 연습생 시절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는 팬들도 아는 사실. 2008년 10월 출연한 해피투게더에서는 껌과 초콜릿을 팔았던 이야기를 했다. 당시 영화에 보조 출연하고 받은 8만 원을 투자해서 껌과 초콜릿을 싸게 떼다가 판 것이다. 당연하지만 멀쩡한 얼굴에 껌을 팔고 있으니 사람들이 의심만 하고 안 팔렸다고. 그때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가엾게 보고 물건을 사주면서 고시원 방값 15만 원을 주셨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100원이 모자라서 2시간 30분 거리를 걸어간 일화나 역삼동 횟집에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 일화, 라면을 아껴먹느라 따로 스프만 꺼내서 끓여 먹은 일 등등 일화가 많다.

본인 SNS에 셀카를 자주 올리는 편이지만, 데뷔 전에는 당시 시대 상황에 맞춰 하두리 캠 사진을 엄청나게 남겼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풋풋한 김재중을 볼 수 있다. 참고로 부공악음이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에 남긴 글도 캡처로 남아 있다.

파일:attachment/김재중/music86hero.jpg

1.2. 데뷔 후[편집]

2003년 12월 26일, 보아 & 브리트니 스페셜에서 동방신기로 데뷔했다. 그룹 이름에 맞춰 네 글자 이름은 영웅재중이었다. HERO. 데뷔 초에는 이름보다 닉네임인 '영웅'으로 많이 불렸다.

파일:attachment/김재중/86hero.jpg

2005년, 정규 2집 'Rising Sun'에서 포텐을 터뜨렸다. 당시 앨범과 함께 나온 단독 사진 한 컷 때문에 팬덤은 충격을 받는다. 팬덤에서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회자되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팬덤의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상을 현실화시켰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한 마디로 비주얼 쇼크. 사진 속 헤어스타일인 미들 울프 컷은 유행의 흐름을 타게 된다. 그러나 안무 연습 중에 다리 부상을 입는 바람에 휠체어와 목발 신세를 져야 했고, 격렬한 SMP 무대를 소화하기가 어려워졌다. 안타깝게도 무대에서 백업 댄서가 가면을 쓰고 대신 춤을 추는 대신, 본인 파트가 되면 뒤에서 무대가 열리고 소파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파일:attachment/김재중/ice86hero.jpg

2006년, 정규 3집 <“O”-正.反.合.>에서는 아이스크림 머리를 하고 등장했다. 이것이 바로 깐 재중 V.S. 안 깐 재중으로 나뉘게 되는 계기.

후속곡 '풍선'에서는 동물 코스튬을 입었다.

2008년, 정규 4집 <MIROTIC>에서는 태닝과 함께 탄탄한 근육질의 삼두와 복근으로 컴백했다. 앨범과 타이틀곡 제목 'MIROTIC'은 재중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미로'는 헤어나오기 힘든 중독성을 뜻하며 여기에 '틱(-tic)'을 붙여 신조어를 만든 것. 쇼케이스 기자회견 때 밝힌 사실로 "팬들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가지만 헤어나오지 못하는 앨범을 만들고픈 우리의 의지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앨범 컨셉이 남자다움을 자랑하다보니 무대 의상 때문에 팬들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셔츠 안 입고 맨몸에 털만 걸치거나 자켓만 입히는 코디의 센스.

파일:external/hanleidbsk.files.wordpress.com/dbsk-mkmf-awards-lei059.jpg

동방신기 시절에는 그의 개별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SM엔터테인먼트에서 재중에게 요구한 건 과묵한 이미지였다. 그럴만도 한 게 데뷔 초에 라디오 방송에서 윤수일의 아파트 노래를 부르다가 숙소 아파트 이름을 공개해 버린 적이 있어서. 나중에는 예능에서 자유롭게 말을 했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편이라서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 유재석이 탐낼 정도였다.

파일:external/cfs11.blog.daum.net/48ef311f0bc2c&filename=%ED%95%B4%ED%94%BC%ED%88%AC%EA%B2%8C%EB%8D%947.jpg

파일:external/2ade4650a084674d896e6bfbe66d4bdb0616afd8013f21a9e8e56206e2aca62a.jpg

좀 엉뚱한 면모가 있다. 여러모로 천연 덜렁이 속성.[5] 태진아 성대모사로 빵 터뜨리기도 한다. 게다가 자타공인 하체 부실로 자주 넘어진다거나 휘청거리면서 예능에서 스포츠를 하면 팀의 구멍이었다. 어쨌든 뒤늦게 입담이 터진 케이스.

일본에서는 금발의 이케맨으로 어필하며 인기를 끌었다. 사실 인기를 끈 정도가 아니라 다섯 멤버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일본에서 드라마, 광고, 뮤비 출연을 단독으로 많이 했다.

재중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한국 활동보다 일본 활동에서 부른 노래가 더 인기를 끌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 보컬 위주로 가면서 파트 비중이 높았고 SMP 위주의 한국 활동과는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동방신기/일본활동 참고.

2009년, SM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 갈등과 소송으로 동방신기에서 나와 JYJ로 새로운 그룹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울러 개인 활동의 폭이 넓어지면서 솔로 음반을 내놓으면서 좋아하는 장르에 도전, 본격적인 연기 활동도 시작했다.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비주얼 쇼크, 제제, 삼두요정, 아왕(아시아의 왕자), 멍뭉이, 인간 사칭 엘프, 국장 등등 다양하다.

2015년 3월 31일 현역으로 입대했다. 입대하기 전에 팬들에게 남긴 영상 인터뷰에서 '팬들이 모두 편지를 보내면 함께 입대한 훈련소 동기들에게 온 편지가 밀려서 못 받으니 편지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JYJ의 세 멤버 중 가장 먼저 입대한 것으로[6] 육군 55사단의 군악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 12월 30일, 오랜 기다림 끝에 만기전역해 팬들의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

본인 스스로도 록 음악에 열정이 있는 듯하고, 또 군 입대하기 전에 '전역하고 나면 록 밴드를 만들 생각이 있다'고 밝힌 바가 있어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하면 아마도 독자적으로 록 밴드를 결성해 활동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전역하고 난 뒤에는 곧바로 콘서트 투어를 시작으로 음악 활동을 재개했고 KBS 드라마 맨홀 - 이상한 나라의 필의 주인공 봉필 역으로 연기 활동도 재개했다.

2. 상세[편집]

2.1. 비주얼[편집]

2.1.1. 외모적 특징[편집]

한마디로 비주얼 쇼크다. 어둡고 섹시하며 차가운 분위기에다 다소 중성적인 외모다. 남자답거나 훈훈한 대학선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중의 외모를 좋아하지 않아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갈린다. 자신은 차가운 인상에 대해 아쉽다고 설명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상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무표정이면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고 서구권에서는 뱀파이어 이미지로 합성된다.

재중은 자신의 인상을 사납고 차갑다고 생각하고 있다. 2006년에 KMTV에서 한 인터뷰 방송에서는 '아마 첫인상만 보고는 자신을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팬들이 인상이 아니라 성격, 인간적인 부분들을 굉장히 좋게 봐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흥분하면 사투리를 쓴다. 준수 : 된장국 같은 사람. 사진 작가 피터 한은 3hree voices를 촬영하다 재중에게 '베를린 천사의 시(독일, 1993년작)'를 본 적 있느냐고 말해 천사에 비유한 적도 있다.

파일:attachment/김재중/shine86hero.jpg

짙은 화장이 잘 어울리는데 아이섀도아이라이너가 잘 어울린다. 솔로 활동에서 장르에 맞춰서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리거나 속눈썹에 장식을 붙이는 등(종이속눈썹 등) 과감하게 연출했다. 화보나 콘서트에서는 화장이 더 진해서 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여성들이 김재중의 메이크업을 따라하기도 한다.

 

중성적인 외모로 인해 남성 팬들에게 진지하게 고백받은 적이 있다. 숙소 앞에 꽃다발을 챙기고 재중에게 고백한 일본의 남자 팬이 팬덤에서 언급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는 "남자인데 김재중이 좋아요."라는 제목의 글들이 많다. 팬덤 내부에서는 많은 팬들이 얼빠를 자처하고 있다. 팬 사이트에서는 김재중은 내일이 리즈 시절이라고 한다.

2.1.2. 신체적 특징[편집]

주름 없이 말랑말랑한 젤리 입술로 알려졌다. 팬들 사이에서는 송혜교와의 입술 비교 사진이 자주 올라왔다. 드라마에서 키스신을 찍을 때 항상 상대 여배우의 입술이 거칠게 느껴졌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해서 자주 하는데 운동을 하면서 겪는 힘듦을 즐기면서 더 운동을 한다는 듯. 동방신기 3집 전후로 해서 운동으로 삼두근을 많이 키웠다. 팬들은 예쁘게 생긴 얼굴에 무슨 근육이냐고 나의 재중이는 그러지 않다고 했으나 꿋꿋하게 운동을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라디오에서 성화를 부려 재중이 그만두라는 의견이 많으면 그만두겠다 했는데 그만두라는 의견이 많아 당황하는 걸 멤버들이 1년에 몇 번만 하라 결론을 내려 어떻게 그러고 사냐고 한다. 거진 운동 오타쿠. 팬들은 건강한 건 좋은 거니까 우락부락 마초만 안 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 나중 들어서는 바빠서 못 해서 근육이 빠졌다고 한다.

허리가 23인치였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팬들이 다이어트를 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팬이 옷을 잘 입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몸매를 관리하면 된다고 대답한 적도 있다. 실제로도 본인의 SNS에 야식을 먹었는데도 59kg이라는 글이 올라오자 팬들은 제발 좀 많이 먹고 다니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역 입대 후 체중이 74kg이 되었다고 한다.
파일:/image/022/2013/10/14/20131014002394_0_59_20131014144304.jpg
등에 타투를 새겼다. 팬들은 멋지긴 하지만 몸에 좋지 않으니 그만 좀 하라는 여론. 왼쪽부터 강자의 쾌락은 약자의 눈물, 죽도록 바란다, 좋은 노래는 좋은 말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매운 맛에 단련된 입맛을 가졌다. 밥에 겨자를 비벼 먹고, 하바네로를 먹고 과일향이 난다고 하고, 부트 졸로키아를 먹고 찌개에 넣어 먹으면 맛있겠다는 말을 해서 주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코코이치방 카레의 10단계에다가 데스소스라는 매운 소스를 뿌려 먹는 걸 즐긴다고 한다. 여러모로 인간이 아닌 입맛. 샌드위치를 만들고 거기에 고추장을 넣는 등의 괴식을 만들기도. 다만 장난삼아 만든 거라 이걸 시식하라는 명을 받은 카메라맨은 정색하면서 여물 씹듯 먹었다. 평은 먹을 게 정 없으면 먹을 음식.

2.2. 실력[편집]

타 멤버와 함께 소속 그룹들을 실력파로 인식시킨 장본인

아이돌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보컬 중에서는 같은 그룹의 멤버와 함께 최상위의 실력을 갖춘 보컬로 평가된다. 데뷔 초부터 꾸준히 가창력 논란에 휩싸였던 동방신기의 메인보컬로서, 창법 자체를 바꾸는 등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7] 팀의 음악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현재에 가까운 가창력을 가지게 된 것은 대략 2006년 일본 1집-한국 3집 사이의 기간.

보컬로서의 음색 자체는 간단히 말해서 파워풀한 미성. 여기에 타고난 하드웨어, 즉 풍부한 성량과 넓은 음역대가 더해져 구 동방신기 5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시원시원한' 가창을 구사할 수 있는 멤버이며 그 덕택에 어느 장르에나 잘 어울리는 것이 강점이다. 저음 0옥타브 솔#, 진성 3옥타브 파#[8], 고음 4옥타브 레에 달하는 음들을 빈틈없이 활용할 수 있는 음역대는 꽤 유명. SM 음악의 기본 베이스인 댄스팝, R&B계 발라드, SMP는 물론 콘서트 등에서의 솔로 공연에서는 락까지도 곧잘 소화해냈다.

그의 강력한 보컬 하드웨어에 대해서 유명한 영상이 있다. 4집 콘서트에서 개인기로 준비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른 리허설 영상이 그것. 콘서트 영상과 비교해보면 재미있는데, 실제 콘서트에서는 몸을 흔들고 고개를 꺾으면서 힘들게 부르는 모습은 알고 보니 연기였고 실제로는 삐딱하게 서서 부르는 모습 때문. 즉, 저 파워풀한 고음을 거의 힘들이지 않고 낸다는 소리다. 준수에 비해 가만히 서서 부르니까 잘 부르는 것처럼 안 보여서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후문이 있다.



한국 1집 때까지는 앞서 말한 파워에만 의존하는 보컬에 가까웠고 실제 라이브의 경우 힘이 너무 들어간 느낌을 종종 주었으나, 이후 여러 곡을 거치면서 기교와 표현력 면에서도 탈아이돌급으로 발전했다[9]. 해당 사항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R&B계 곡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메인. 발라드에서 감정선의 미세한 부분까지 잡아내는 표현력과 완급조절력 또한 인정받는 부분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한국 2집의 ‘내가 허락할테니’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들어보자[10]. 일본 4집의 ‘TAXI’도 좋은 예. 1절 후렴과 마지막 후렴의 음/가사가 같은 부분을 곡 전개에 따라 판이한 분위기로 소화해낸다.

한국 앨범에서도 물론 리드보컬이지만, 역할 배분이 좀 더 확실한 일본에서는 명실상부한 제 1보컬로서 맹활약한다. 특히 싱글컷된 에서 후렴구를 포함한 곡의 거의 반 이상을 담당하며 좋은 평가를 받아온 바 있다. 역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곡들인데 파트 편중 덕택에 라이브 때마다 죽어나가는 모습도 곧잘 볼 수 있었다(...).

한국 2집 이후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될 때는 미친 수준[11]. 솔로 2집 수록곡 Run Away에서는 아예 한국어를 영어처럼 부르기도 했다...

같은 그룹의 멤버 준수와는 여러모로 대비된다. 재중은 보컬로서 타고난 성량과 음역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음치였던 반면, 준수는 이와 정반대로 매우 뛰어난 음감을 가지고도 변성기를 오래 겪어 혹사 끝에 망가진 목으로 하드웨어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둘 다 자신의 약점을 연습과 경험으로 극복해 탈아이돌급으로 평가받는 보컬로 성장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사실 이런 점 말고 순수하게 가창 스타일만 비교해도 둘은 완전히 다른 타입이다.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고음 또는 소위 '예쁘다'고 표현되는 미성을 내세우는 재중과는 달리, 준수는 상대적으로 좁은 음역대를 가졌지만 그 안에서의 엄청난 표현력과 안정감, 그리고 허스키한 미성의 개성있는 음색을 무기로 한다. 물론 둘의 스타일이 판이한 덕택에 동방신기의 음악은 한층 풍성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팬들도 그 점을 인지하는지라 이 둘은 흔히 ‘보이스메이트’라는 이름으로 엮이며, 팬들에게 최고의 보컬 콤비로 찬양받는다.

아카펠라에서의 파트는 미들, 즉 메인. 음역대로만 따지면 미들하이를 맡는 준수와 파트를 바꿔야될 것도 같은데 아무래도 음색 특성상 좀 더 '원음'에 어울리는 쪽이라 그렇게 된 듯 하다. 그래서인지 아카펠라 시작 전의 음정 잡기를 재중의 음에 맞춰서 조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외에 작곡은 '잊지 말아줘(忘れないで(Wasurenaide))'처럼 확실히 인정받는 노래도 있고, 솔로 1집에 4곡 작곡, 10곡 작사에 참가하는 등 동방신기 탈퇴 이후 오히려 적극적으로 곡 제작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를 기대해볼 만 하다. 다만 작사 성향이 다소 '난해한' 가사들이 많다는 평.

2.3. 취미[편집]

취미는 요리다. 레시피는 안 보고 어머니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실력이라는 듯. 요리 실력으로 동방신기 시절에는 어머니 역할, 주방 담당으로 비치고는 했다. 덧붙이자면 앞치마가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린다.

요리를 깔끔하게 하는 편으로 재료를 마구잡이로 넣지 않고 순서대로 예쁘게 올려 놓는다. 그래서 누가 와서 국자로 휘저어 놓으면 분노 폭발. SNS에 올라오는 음식 사진 한 장만으로 정갈한 요리 솜씨를 짐작할 수 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정도는 기본. 양지머리로 고깃국을 끓이고 대하찜을 해먹고 SNS에서 자랑한다. 보는 사람은 배고프다. 위꼴사. 종종 팬들에게 요리 팁도 알려준다.
파일:attachment/김재중/ty86hero.jpg
며느리들이 올리는 블로그 포스팅 같다

2010년 일본 방송에서 가츠동을 만들어 드라마 촬영 스태프들에게 선물하기도...# 참고로 이 가츠동을 맛본 사람들 중에는 에이타도 있었다. 에이타는 "재중 밸런스가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는 작가가 차무원 역할을 맡은 재중의 팬들을 위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했는지 서나윤(왕지혜)을 대신해 뚝딱뚝딱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앞치마까지 두르고 칼질하고 한 손으로 프라이팬을 돌리는 모습을 보고 서나윤(왕지혜)이 "무원아, 너는 출구가 없구나."라는 감탄사까지 내뱉었다.

2013년 1월, 한국에서 열린 첫 솔로 콘서트 겸 생일 팬미팅에서 라볶이를 끓여서 팬들을 무작위로 추첨해 먹이는 코너를 가지기도. 친한 지인들에게 직접 요리를 해서 대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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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한 일본에서 이 점이 특이한 지 방송에서도 요리를 몇 번 했었고 이야기 소재로도 많이 사용했다. 방송에서 요리하는 코너가 있으면 단연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는데, 2008년에 channel-a에서 타코야키를 만들 때는 가장 모양과 맛이 괜찮아서 팬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와사비가 들어있어서 팬들은 먹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일본 스페이스샤워TV에서 한 '요리가 능숙할 것 같은 남성 뮤지션 베스트10'에서는 2위에 재중이 랭크되었다.

메종이라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도 본인의 집을 소개하면서 알리오 올리오를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소속사인 씨제스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수확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김준수박유천이 악전고투하면서 닭요리를 만드는 동안, 마치 보란듯이 전문가(?)의 솜씨로 능숙하게 닭볶음탕을 만들었다. 나중에 유천과 준수는 재중이 만든 닭볶음탕을 먹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2014년 NYLON 잡지 인터뷰에서는 개인적으로 요리 자격증을 따고 싶으며 책을 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2.4. SNS활동[편집]

2.5. 팬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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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인기가 압도적으로, 일본 여성이 뽑은 '남자 친구로 삼고 싶은 싶은 남자(CDTV 2010년 상반기/하반기)' 1위, 베스트 지니스트(2010년 3위, 2011년 2위)에 등극했다.(국내외 통산) 이 두 투표는 일본 내에서 3대 투표에 속하는 차트로서 인기의 지표가 되는 가장 권위 있는 투표로 꼽힌다. 나머지 하나의 투표는 잡지 앙앙의 '안기고 싶은 남자'인데 현재 행하여지지 않고 있음을 고려하면 가장 신뢰도 있는 양대 투표라고 할 수 있다. 김재중은 이 차트에서 차근차근 올라와 결국 1위까지 기록하여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외국인이 1위를 차지한 것은 16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에서 동방신기를 아는 일반인은 대체로 '한가운데에 있는 애가 잘생겼다'로 알고 있다. 동방신기에서 나온 이후 국외 활동을 잘 못하고 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다. 참고로 2011년 일본 트위터 유명인 랭킹에서 화제의 일본 국민 걸그룹 AKB48에 이어 2위를 기록하였으며, 개인으로서는 1위의 기록이다.

2014년 일본에서 시행된 K-POP 이케멘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기존 팬을 위주로 콘서트밖에 활동하지 못했는데도. 1위로 뽑힌 이유가 여러 팬을 공감의 도가니에 빠트렸다.[12]

해외의 한 팬은 그저 예쁘게 생겼기 때문이 아닌, 노래, 연기 등에서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단순한 아이돌에 국한된 것이 아닌 엔터테이너적인 모습이 큰 인기의 요인일 거라는 평을 내렸고, 많은 팬의 공감을 샀다.

이렇듯이 국내, 해외를 포함해서 팬덤이 크다 보니 다양한 서포트와 자선활동을 볼 수 있다. 2011년 7월, 국내 첫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의 제작 발표회 당시 28개국에서 6톤이 넘는 쌀 화환을 기증하여 개인 쌀 화환 신기록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2012년 5월 '닥터 진'의 제작 발표회에서 36개국에서 총 23.68톤의 기록으로 갱신되었다. 2012년 7월, 드리미에 따르면 적립된 쌀은 아동들에게 기부되었다. 이는 김재중이 가족들과 상의해 50명의 아이들에게 장기간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온데 따른 것이다.[13]

드라마의 서포트 및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명동 전광판 등의 스케일 큰 홍보를 중국 팬들이 입국하여 맡을 정도다. 대륙의 기상 '보스를 지켜라' 때는,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LED 광고를 했다.



'닥터 진' 때는, 지하철 광고와 버스 광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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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팬클럽 '까칠한 HEROSE 누나들'에서는 굿즈 수익금을 토대로 아름다운 재단에 '김재중부메랑장학기금'을 개설했다. 나눔은 사랑으로 돌아온다는 김재중의 말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장학기금이다.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후원으로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서라고.

이외에도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의 수술비를 돕기도 하고, 자연재해에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돕기도 하는 등 소위 조공에만 치중하지 않는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디시인사이드에 김재중 갤러리도 개설되어 있다. 에이전시를 맡고 있는 C-Jes 엔터테인먼트의 병크가 터지면서 김재중 개인 활동을 위주로 응원하고 있으며 JYJ 갤러리와는 다른 길을 가면 된다고 보면 된다.

2.6. 친분[편집]

기본적으로 술자리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상당한 연예계 인맥을 가지고 있다. 동방신기가 일본진출에 성공하고 일본어가 유창해지면서 일본에서도 친구를 만들 정도.

일단 장근석[14], 허영생, 김현중, 송중기[15], 홍석천,이진성(먼데이키즈)., 김희철, 진이한, 박지빈, 정대세, 오재영, 야마시타 토모히사, 미조바타 준페이, 코이케 텟페이, 시로타 유우 등등. 지드래곤과도 친분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16]

장근석과는 SNS에 인증샷이 자주 올라오긴 했지만, 2014년 2월에 열린 장근석 팬미팅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하면서 절친 확정. 팬미팅 무대에서 노래도 부르고 토크까지 선보였다. 정규 1집 리패키지 'WWW 화장을 지우다'의 타이틀곡인 '화장'을 불렀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토크를 하면서 당황+쑥스러워하는 재중을 볼 수 있다.# 재중이 직접 담근 마늘장아찌까지 선물하는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장근석은 장아찌가 안 익어서 버렸다고 그리고 최근에는 함께 허니버터칩을 먹은 인증샷을 트위터에 올렸다.

진이한과는 '닥터 진' 촬영을 통해서 친구가 되었으며, 함께 여행까지 갔다 왔다. 이후 트라이앵글 촬영장에 나타나 응원까지 해주는 사이.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박지빈과도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JYJ 콘서트에도 찾아왔다. 홍석천은 한 인터뷰에서 연예계 대표 패셔니스타를 재중으로 꼽았다. 재중의 옷장에는 훔치고 싶은 옷들이 너무 많다고 트위터에서도 내 동생이라고 부른다.

김현중과는 힘든 시절 1년간 동거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 서로 편지를 주고 받을 정도로 진한 우정을 자랑했다고. 지금은?

허영생하고는 연습생 시절에 동거했다.

뜻밖에 운동선수하고도 인연이 있는데, 정대세나 오재영이 거기에 속한다. 정대세와는 2012년 6월,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린 박지성 자선 축구에 참여한 인연으로 친구가 되었다. 정대세가 2013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면서 한국에 왔으니 재중의 콘서트를 가보고 싶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 오재영과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넥센 경기에 와서 관람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디시인사이드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는 이름부터 넥센 팬이 될 운명이었다며 재중에게 승리의 요정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야마시타 토모히사 외 일본 친구들은 재중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면서 인증샷을 남기고, 특히 야마시타 토모히사는 재중을 만나기 위해 직접 한국을 찾아와 재중이 감동의 트윗을 올리기도. 또한 인터뷰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시아의 아티스트는 Chen Bo-lin, 동방신기의 재중, Jaycee Chan 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재중은 기자들이 인맥 유지의 비결에 대해서 묻자 비결은 따로 없고 음악을 한다거나 동종 업계에 있는 친구들은 방송에 비치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종종 연락하며 소식을 물어 본다고 정리했다.

3. 활동[편집]

3.1. 동방신기 이후의 음악 활동[편집]

자세한 설명은 김재중/음반 목록 항목 참조.

3.2. 콘서트[편집]

일산신도시 킨텍스를 시작으로 첫번째 아시아 투어를 했다. 콘서트 투어명을 줄여서 '너나콘'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재중의 생일과 겹치기 때문에 생일 파티 컨셉이 추가되었으며, 재중을 위해 팬들이 마련한 깜짝 생일파티를 시작으로 1부 팬미팅 ‘You’, 2부 팬미팅 ‘My’, 3부 미니콘서트 ‘Mine’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팬들을 위해 사전에 재중이 공연에서 불렀으면 하는 한국 가요 1곡을 신청받는 이벤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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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장소

일정

Your, My and Mine

한국

일산 킨텍스

2013.01.26~27

태국

방콕 바이텍홀

2013.02.17

중국

상해 상해대무대

2013.03.17

중국

홍콩 HKCEC홀

2013.03.24

중국

난징 올림픽체육중심

2013.04.06

대만

타이베이 국립대만대학교체육관

2013.04.13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

2013.06.24~26


정규 1집 'WWW' 활동의 일환으로 아시아 투어를 했다. 한국의 경우, 티켓팅 오픈 5분 만에 전석 매진되었다. 한국 앙코르 콘서트 타이틀에 'J party'라는 단어가 덧붙여졌는데, 이는 정규 1집 라이브 무대는 물론 재중의 생일을 기념해 팬미팅 세션이 추가된 것. 생일 파티까지 한자리에서 치루었다.

일본 공연에서는 라르크앙시엘(L'arc en Ciel)의 하이도가 작곡하고 나카시마 미카가 불러 유명한 'Glamorous Sky'와 B'z의 히트곡 'Ultra Soul' 등을 추가로 불렀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야외공연인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 공연에서 평일 이틀동안 6만명을 동원하여 인기를 과시했다. 이후에도 오사카 공연이 이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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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장소

일정

2013 김재중 정규 1집 아시아 투어 콘서트

한국

서울 코엑스

2013.11.02~03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

2013.11.15~16

대만

타이베이 국립대만대학교체육관

2013.11.23

중국

난징 오대산체육관

2013.12.07~08

일본

오사카 죠홀

2013.12.17~18

한국

부산 벡스코

2014.01.04

한국

광주 염주체육관

2014.01.11

일본

나고야 가이시홀

2014.01.22~23

한국

서울 고려대화정체육관

2014.01.25~26

3.3. 팬미팅[편집]

2012년 대통령 터키 순방 외교사절단에 포함되어 터키 앙카라 대학교에서 열린 '젋은 세대와의 대화' 간담회 및 대통령궁 만찬에 참석했다. 아울러 팬미팅도 함께 하면서 해외 인기를 입증했다.

팬미팅

장소

일정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 팬미팅

중국

상해 국제체조경기장

2011.12.10

김재중 팬미팅 (터키한국문화원 초청)

터키

앙카라 대학강당

2012.02.05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 팬미팅

대만

타이베이 ATT SHOW BOX

2012.05.23

드라마 닥터진 팬미팅

한국

서울 연세대학교강당

2012.07.22

2012 김재중 아시아투어 팬미팅

중국

난징 올림픽체육중심

2012.10.20

태국

방콕 시암파라곤

2012.10.23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012.11.03

베트남

호치민 SECC

2012.11.10

3.4. 연기 활동[편집]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2004): 놀랍게도 첫 연기도전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출연한 것이다. 천만 관객 배우 '유해발굴 현장단원' 역으로, 단역이다. 자기 모습을 본인도 찾지 못했으며, 수많은 팬들이 무한 팬심으로 찾아봤지만 끝내 못 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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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천국의 우편배달부> (2009) : SBSTV 아사히가 합작한 드라마 형식의 영화다. 텔레시네마 프로젝트 시리즈 중의 한 편으로 후술할 작품인 '솔직하지 못해서'의 극본을 맡은 기타가와 에리코가 각본을 썼다. 영화로 먼저 개봉하고 나중에 TV 단편드라마 형식으로 방영했다.
    한효주와 함께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 키스신이 등장하면서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뒤풀이 현장 사진의 다정함이 더 충격이었다 여담으로 포스터를 보면 '김재중'이 아닌 예명 '영웅재중'으로 쓴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의 소송 상황과 팬덤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영웅재중'으로 쓴 것이라고 팬 시사회에서 밝혀 팬들을 감동받게 했다.
    여기서 김재중은 잘 나가는 벤처 기업의 CEO로 오만하게 살다가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에 빠지고 천국으로 편지를 배달하는 일을 맡게 된 말 그대로 천국의 우편배달부 역할을 맡았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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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솔직하지 못해서> (2010) : 우에노 주리, 에이타 주연의 일본 후지TV 드라마. 한국인 박성수 역으로 출연했다. 트위터를 통해 만난 남녀들이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였는데, 혼전 임신, 자살, 동성애, 성희롱까지 파격적인 소재가 등장했다.
    앞서 흥행작들을 만들어 냈던 작가 기타가와 에리코 답지않은 각본이었다는 평이 대다수였지만, 이 드라마로 재중은 제14회 일본 닛칸스포츠 드라마 그랑프리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18]

    한국인이지만 부모님과의 불화와 갈등으로 일본으로 건너온 청년 역할이었는데, 드라마 상에서는 '닥터'라는 트위터 닉네임으로 불렸다. 이때의 인연으로 에이타가 방한했을 때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재중의 목소리는 여태껏 내가 들은 남성의 목소리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는 감상을 말하며 최근 연락이 안 되니 연락을 바란다는 희망 사항을 피력한 바 있다. 우에노 주리도 방한 인터뷰에서 "제가 볼 때 영웅재중은 배려심이 있는 친구다. 자신이 망가지면서까지 현장 분위기를 띄운다."면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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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 (2011): 2011년 8월 3일 처음 방영한 SBS 수목드라마. '차무원' 역으로 출연하여 다른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과 달리 상당히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룹 후계자를 다투는 본부장 역할로 프레젠테이션 씬에서는 스태프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주인공 차지헌 역의 지성과 일과 사랑에서 라이벌 관계로 초반 노은설 역의 최강희와 함께 잠시 삼각 관계를 형성하지만, 일찌감치 지헌과 은설의 사랑의 행방은 결정되고 후반부에 서나윤 역의 왕지혜와 '색기' 커플로 맺어진다. 이 때문에 서나윤과 차무원이 보여주는 러브씬 때문에 브라운관 앞에 모인 팬들을 또 다시 충격에 빠뜨린다. 침대 장면이..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가장 인기를 끈 것은 브로맨스적 요소로 어필하는 일명 '차차 커플'이었다. 극중 DN그룹 경영권승계 문제와 러브라인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했던 사촌 간인 차지헌 & 무원을 일컫는 말로 서로 만나기만 하면 말싸움, 어깨 싸움은 기본에 심지어는 머리채를 잡고 승강이를 벌이는 초딩 몸개그까지 연출하는 등 투탁거리면서도 은근히 서로를 챙기는 모습으로 즐거움을 선사하였다. 이 드라마에서의 인연으로 최강희가 진행하는 라디오에 특별히 지성과 함께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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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닥터 진> (2012): 2012년 5월에 시작하여 8월에 종영한 MBC 주말특집극이다. 맡은 역할은 '김경탁'. 첫 사극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초반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안정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극이 진행될 수록 몰입도 높은 캐릭터 연기를 이끌어내어 성장하는 배우를 보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하였으며, 극의 중반부 무렵의 인상적인 오열 연기는 '아이돌의 편견을 깼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일본에서 이미 드라마화 되어 호평을 얻은 바 있는 <닥터 진>에서 원작에는 없는 등장인물로 한국판의 오리지널 캐릭터인 '김경탁' 역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내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한국판 닥터진의 주목하여 볼 만한 곳으로 꼽히고 있으며, 최종화에서는 'ギョンタク(경탁)'의 이름이 일본 트위터의 핫워드 순위에까지 실시간 진출하는 등 희귀한 에피소드를 낳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일본 DVD 홍보도 경탁 중심으로

    극중 홍영래(박민영 분)에 일편단심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기본 쌀셔틀 결국 목숨까지 셔틀. 순애보를 펼침으로써 전작인 <솔직하지 못해서>와 <보스를 지켜라>에 이어 3연속 해바라기 같은 짝사랑 전문 배우로 등극했다는 기사 다수 외사랑 연기가 돋보였다. 하지만 같은 그룹의 멤버 박유천과 비슷한, 너무 힘이 들어간 사극 톤으로 지적을 받아 연기 선생님이 같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긴 하다

    또, 전작의 '차차 커플'에 이어 다시 한 번 남남 커플 이슈를 탄생시킨 것도 흥미롭다. 홍영래의 오빠이자 죽마고우인 홍영휘(진이한 분)와는 원수와 다름없는 출신 배경과 정치적 대립 관계로 서로를 속이면서도 최후까지 서로를 지키려는 눈물겨운 우정을 보임으로써 남남 커플도 남녀 간의 애정 못지 않게 애절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탁휘커플'로 불리는 이 둘은 메인 커플인 닥터 진과 영래를 제치고 닥터진의 멜로 담당으로 불리며 사랑을 받았으며, 결국 닥터진이 남긴 것은 베스트 커플 상을 노려봄직한 '탁휘 커플', 김경탁홍영휘의 눈물겨운 우정이었다...라는 총평 기사로 언급되기도 했다.


  • 영화 <자칼이 온다> (2012): 송지효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다. 별로 흥행은 못했다(...) 인기 절정의 한류 스타이자 여심을 사로잡는 꽃미남이지만 성격은 그야말로 망나니인 가수 겸 배우 최현 역으로 출연했다.

 

 

  • 드라마 <스파이> (2015) : KBS 2TV에서 방영한 드라마로 주인공 김선우 역을 맡았다.

 

  • 드라마 <맨홀 - 이상한 나라의 필> (2017) : 2017년 8월 9일부터 2017년 9월 28일까지 KBS 2TV에서 방영한 수목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봉필' 역을 맡았다. 하지만...

3.5. 그 외의 활동[편집]

  • 2009년 태군의 싱글 1집 'Call Me' M/V에 출연했다. 두 사람 모두 충남 공주 출신으로 재중은 우정 출연했다. 이 M/V에서 박신혜와 함께 출연했다. 박신혜와 어깨를 끌어 안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총을 쏘는 장면이 팬들에 의해 2차 창작의 모티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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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하마사키 아유미의 싱글 'Blossom' M/V에 출연했다. 비극적인 시한부 인생의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일본 활동 당시에 AVEX 소속이었던 인연도 작용했다. 이후, 이런 사실들을 엮어서 하마사키 아유미가 한국에서 열린 JYJ 쇼케이스에 다녀간 것을 두고 일본의 한 매체에 의해 열애설까지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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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팬들 염장지르는 장면이 많다

  • 2011년 JYJ 월드 투어에서는 아시아 지역 한정으로 공연 총 연출을 맡았다. 덕분에 김 감독님이라는 애정어린 애칭으로 팬들에게 불렸다.

  • 2011년 6월에 열린 'LG휘센 Rhythmic All Stars 2011'이라는 리듬체조 갈라쇼에서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아이돌로서는 상당히 이색적인 행보다. 음악 선정과 편곡, 무대 효과, 안무, 의상까지 모두 관여하면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활동으로 손연재와의 친분이 생기기도 했다.

  • 2012년, 가수 백승헌의 데뷔 싱글 '해 뜰 때까지'에 작사 및 프로듀스로 참여했다. 뮤비 출연 다 해놓고 티저에만 나오고 본편엔 안나온다

 

  • 2013년 8월 12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 601회 '동물원이 살아있다2'에서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4. 수상경력[편집]

  • 2010년

    • 제14회 일본 닛칸스포츠 드라마 그랑프리 남우조연상

    • 제27회 일본 베스트 지니스트 어워드 일반 선출부문 남성 3위

    • 제2회 필리핀 K-Pop 컨벤션 어워즈 Hottest Male Idol 부문 수상

  • 2011년

    • 제3회 쇼티 어워즈 셀러브리티 부문 수상

    • 제28회 일본 베스트 지니스트 어워드 일반 선출부문 남성 2위

    • 제3회 필리핀 K-Pop 컨벤션 어워즈 Hottest Male Artist 부문 수상

    •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

  • 2012년

    • 제4회 쇼티 어워즈 셀러브리티 부문 1위

    • 제29회 일본 베스트 지니스트 어워드 일반 선출부문 남성 2위

    • 제4회 필리핀 K-Pop 컨벤션 어워즈 Hottest Male Artist 부문 수상

    • MBC 연기대상 남자 신인상

  • 2013년

    • 제5회 쇼티 어워즈 셀러브리티 부문 3위

    • 제8회 서울 드라마 어워즈 한류드라마 주제가상 '살아도 꿈인 것처럼' (MBC 특별기획 드라마 '닥터 진'OST)

    • 독일 Remarkable Korean Entertainment Awards 2013 - 베스트 남성 솔로 아티스트상

    • 제5회 필리핀 K-Pop 컨벤션 어워즈 Hottest Male Artist 부문 수상

  • 2014년

    • 제7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남자 최우수상

  • 2017년

    • 제31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아시아 인기상[19]

5. 논란[편집]

5.1. 음주운전[편집]

2006년에 음주운전에 적발되어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자숙 1개월도 되지 않아 콘서트로 활동을 재개했다. 기사

5.2. 사생팬 폭행 사건[편집]

2009년경 김재중박유천이 사생 스토커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것을 녹취했다는 10분 분량의 음성 파일이 2012년에 한 연예 언론에 공개되어 논란이 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JYJ 항목 참조.

5.3. 애국가 가사 실수, 태극기 부착 실수[편집]

군생활 중 애국가 가사를 실수하거나 태극기를 거꾸로 부착해서 논란이 되었다. 기사

5.4. 출산 발언 논란[편집]

2017년 1월. 팬들에게 '요즘은 혼전 임신이 나쁜 게 아니라 선물이래. (중략) 출산율도 낮은데 결혼하고 아이를 많이 낳아라. 콘서트에 참석한 남성 팬들과 공연 후 늦게까지 있어도 좋다'는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기사

반면, 악마의 편집이란 주장도 있다. 링크 "예전에는 연애하다 실수해서 애를 낳고 결혼했지만 요즘에는 그게 되게 반갑고 좋은 일이라잖느냐"라고 덧붙였다면서, 과거에는 실수라고 했던 일들이 아이를 보기 힘든 요즘에는 좋은 일, 즉 경사일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이라는 것.

김재중은 자신의 발언 이후 팬들에게 공식 사죄했다.

6. 트리비아[편집]

  • tvN에서 조사한 가장 가정사가 복잡한 연예인 1위에 선정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 이상형은 손발이 예쁜 여자. 데뷔 14년 동안 줄곧 밀고 있다. 사람을 처음 보면 얼굴이 아니라 부터 보고 손톱 끝까지 꼼꼼히 챙겨보며, 손이 예쁘면 거기서 빛이 난다고(...) 손 페티시인가 일본 방송에서는 이상형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하자 다른 멤버들이 얼굴을 그릴 때, 혼자서 손 하나만 그려놨다.

 

  • 좋아하는 동물은 코끼리. 인도 같은 곳을 가면 자체적으로 팬들과 회사가 코끼리 굿즈를 선물해준다. 코끼리 모양의 아이템을 사서 트위터에 올리면 팬들이 보고 너도나도 같이 질러대서 품절 기록을 세우고 있다. 판매처들도 당황해서 아이돌은 대단하구나 하고 인증할 정도. 그래서인지 팬아트에 동물이 같이 그려지면 코끼리일 때가 많다. 팬사이트에서는 굿즈도 코끼리 모양으로 자체 제작한다.

 

  • 소시지 껍질 빨리 뜯기로 일본 기네스북에 올라와 있다.#

 

  •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차종이 자주 목격되는데, 보유하고 있는 차종 중 하나가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그리고 디스패치에 의해 논현동의 어느 대패삼겹살집에 외식을 하러 나온 모습이 찍혔는데 그때 몰고 온 차가 롤스로이스 레이스였다.[20] 기본적으로 JYJ 멤버들 모두 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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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완묘는 러시안 블루 종으로 이름은 지지. 이름인 지지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가 데리고 다닌 검은 고양이 이름에서 따온 거라는 설이 있다. 애완견은 그레이트 피레니즈로 이름은 비크. 자신의 별명 비주얼 쇼크에서 따왔다. 사료를 엄청나게 먹는 데다 덩치가 커져서 감당이 안 되는 바람에 공주시에 있는 본가에서 키우는 중. 주인 말도 안 듣는 귀차니즘이 쩌는 개였다 2014년 들어서 '히로'라는 이름의 개를 기르고 있다. 팬들 뿐만 아니라 주인까지 직접 못생겼다고 대놓고 말하는 강아지..

 

  •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 최초로 일본 성우와 만난 가수이기도 하다. 그 만난 일본 성우는 가수를 겸하는 성우의 대표주자인 미즈키 나나. 일본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인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입니다에서 같이 방송했다. 김재중 덕에 미즈키 나나가 한국의 순대를 먹었다. 미즈키 나나의 프리큐어 드립을 보고 웃다 쓰러지는 김재중의 모습은 덤

 

  • 패션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옷을 잘 입고 다니는데, 한때 여성복에까지 관심을 가졌다는 듯. 좋아하고 자주 애용하는 패션은 니트에 청바지 그리고 부츠. 유행을 선도하는 스타일이기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실하다. 편한 옷을 좋아하고 정장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악세사리 성애자.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매번 수많은 악세사리들을 착용하고 다닌다.

 

  • 2011년 11월 호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메종에서 새롭게 이사한 집의 인테리어를 공개.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심플하고 럭셔리한 느낌 때문에 화제를 모았다.

 

  • "한 해 동안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여러 가지 기부 활동에 참여 하면서 태어나 자란 곳의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작은 도움을 줘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히면서 2011년 연말에 모교인 공주 중동 초등학교에 2,000만원, 공주사대 부속 중학교에 3,000만원을 기부했다.

 

  • 2012년 5월, 태국 코끼리 멸종 위기를 걱정하는 트위터 멘션이 올라오자 해외 팬들이 '잴리펀트를 구하라!(Save the JAElephant!)'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잴리펀트는 재중(Jaejoong)과 엘리펀트(Elephants)의 합성어다. 코끼리 보호를 위해 기부하는 프로젝트.

 

파일:attachment/김재중/chung86hero1.png

 

  • 2013년 12월 23일, 충청남도 공식 트위터에 충남의 아들로 올라왔다. 충청남도 도지사가 인증샷으로 마무리. 재중도 동방신기 시절에 출연한 해피투게더에서 공주의 3대 자랑으로 박찬호, 박세리, 김재중이라는 발언을 했다.

 

  • 몰더(Moldir) 브랜드의 아트 디렉터로 참여해서 제품 디자인을 맡았고, 2014년 1월에 열린 브랜드 론칭 행사에도 참석했다.

 

 

  • 군복무 중이었던 2015년 10월 2일, 이전에 소속된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와 충청남도 계룡시 계룡대 비상활주로에서 진행된 '제13회 지상군 페스티벌'을 통해 재회했다. 유노윤호는 아나운서 최송현과 함께 MC를 맡았고, 김재중은 무대를 맡았다. 다만 직접 만나 대화하지는 않았고 서로서로 말 한마디 없이 멀리서 지켜보았을 뿐. 왜 하필 너냐?훼이크둘은 재회했다. 심지어 허그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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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육군 소속으로 21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2016년 12월 30일자로 예비역 병장 계급으로 만기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으로 되돌아왔다. 이로써 JYJ 멤버 중 최초의 군필자가 되었다.하지만 곧바로 이 분과 바톤 터치 숨 돌릴 틈도 없이 1월부터 바로 콘서트에 돌입한다고 한다.[21]그와중에 군 생활 도중 그룹 덕분에 힘이 났다고 한다.

 

7. 외부 링크[편집]

[1] Kim Jae-jung은 본인 여권의 표기이며, Kim Jaejoong은 본인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기이다.[2] 구 동방신기에서는 리드보컬이 김재중 한명이었고 현재의 메인보컬과 같은 뜻이다.[3] 보아와 함께 출연했다.[4]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서 팬들이 붙여준 별명.[5] 멤버들의 벗은 모습을 찍는다거나 하는 짓을 해놓고 특별한 모습을 원한다고 둘러댔다.[6] 구(旧) 동방신기 5명 구도로 따져도 역시 첫 번째로 입대하게 된 셈이다. 왜냐하면, 김재중이 2015년 3월에 입대한 후에 곧바로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가 그해 7월에 입대했고, 이어서 그해 8월에 같은 그룹 JYJ의 멤버 박유천이, 이어서 그해 11월동방신기의 멤버 최강창민이 입대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마지막 입대 멤버는 같은 그룹 JYJ의 멤버이자 막내인 김준수다.[7] 한국 1집과 2005년 여름 싱글 사이에 창법이 확 바뀌었다.[8] 솔로 1집 수록곡 '빛'에서 보여주었는데, 사실 해당 곡 라이브시에는 반드시 반음 낮춘다. 다른 노래에서 해당 음 찍었던 것 있다면 추가바람.[9] 2004년 활동 당시와 2005년 이후의 ‘Whatever They Say’ 공연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10] 이어지는 두 소절의 느낌이 판이하다.[11] 2009년 The Secret Code 투어 도쿄돔 공연에서의 'Forever Love', 'Bolero'나 2010년 Thanksgiving Live in Dome에서의 '너를 위해', 'I have Nothing' 등은 재중의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상으로 꼽힐 정도다.[12] JYJ 멤버는 물론,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있는 재중. 특히 여성에게 친절하고 신사적이라 그런 그의 따뜻함에 반해버린 팬들도 많다. 최근에는 소년같이 귀여운 웃는 얼굴뿐만 아니라 남자다운 섹시한 표정도 짓는 재중. 나이가 들수록 반짝임을 더해가는 재중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13] 관련기사 http://www.ebuzz.co.kr/news/min/2617031_4993.html[14] 둘은 장근석의 팬미팅에서 만난 인연이 있다. 장근석 항목 참조.[15] 송중기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한 JYJ의 멤버 박유천과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같이 출연한 인연이 있고, 또다른 멤버 김준수송중기의 드라마(성균관 스캔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태양의 후예) OST를 부르는 인연이 있다. 여담으로, 송중기는 군복무 중에 김재중이 나왔던 드라마 트라이앵글을 시청했다고 한다.[16] 트위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사생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지드래곤에게 "지용아, 너희도 사택(사생택시)이 있니?"라고 물었는데 지드래곤은 "형, 사택이 뭐에요?"라고 했다고. 기사 참조.[17] 여담이지만 김재중은 이 당시 연기에 그리 익숙하지 못하여 한효주와 감독에게 미안함을 느꼈었다고 회고했다.[18] 이 드라마에서 쌓은 내공으로 '보스를 지켜라'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실제로 '솔직하지 못해서'의 초반에서도 약간 서툰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평이 많다.[19] 가수로서 8년만에 국내가요시상식에 참석해서 상을 받았다.[20] 김재중은 군 입대를 하기 전에 보유하고 있던 자동차들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21] 전역과 동시에 바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은 팬들에겐 더 없이 기쁜 소식이겠지만 사실 이렇게 군 전역과 동시에 쉼없이 바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군생활 2년 동안 쌓인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라는 것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아서 이제 막 전역한 입장에서는 한두 달 정도는 푹 쉬고 놀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대한민국 남자들의 마음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남자들이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군 전역 이후 최소 한 달 정도는 진짜 푹 쉬고 놀면서 컨디션을 다시 재조정한다. 칼복학생 : 네? 뭐라구요? 그런 면에서 그가 현재 얼마나 무대와 팬들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있는지를 방증한다고도 볼 수 있다. 참 부지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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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 16회를 올려보았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업로드 되어있으니 편하게 보실 수 있을거예요.

동영상파일다운로드하기 -> *글씨 클릭해주세요.

파일다운로드기간:2017년 11월 23일 목요일부터 2017년 12월 23일까지.

기간이 지나면 다운로드 안되요.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E16.END.170928.720p-NEXT.mp4 (490.13MB)

 

 

posted by 새연(saeyeon)

오늘은 미니홈피를 혼자서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릴께요~

(미니홈피 혼자서 만들기)
1. 인터넷에서 이미지 검색을 하여 미니홈피 스킨 중 완성이 되지 않은 깔끔한(*메뉴없음,사진없음,배경화면 스킨만 있음)스킨을 골라 저장한다. *검색어는 "미니홈피 스킨"이라고 입력하고 이미지 검색을 하시면 됩니다^^
(아직 덜 완성된 깔끔한 미니홈피 스킨 보기)

위의 사진과 같이 깔끔한 스킨을 골라야지 직접 편집하실 수 있습니다!
미니홈피 스킨 더보기 ->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sm=tab_jum&query=%EB%AF%B8%EB%8B%88%ED%99%88%ED%94%BC+%EC%8A%A4%ED%82%A8


2. "홈,프로필,갤러리,사진첩,방명록,메모장,게시판" 이런 버튼들을 한글과컴퓨터로 미리 만들어놓는다. (*도형 중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를 추가한 다음 만들어진 도형을 글상자로 만든다. 그 다음에 글상자가 된 도형에 메뉴들을 적은 다음 이미지로 저장을 누른다. 그 다음에 글씨가 이미지로 저장 된 파일(메뉴파일)을  실행 후,그림에 링크를 단다.)

3. 아래의 스킨처럼 꾸민 후, 무료홈페이지 만들기 사이트 아티( https://aty.kr/ ) 사이트에 가입한다.


*네이버나 구글,페이스북 계정으로 로그인 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 "마이아티"를 클릭 후 "홈페이지 추가"버튼을 누른다.

"디자인 편집"버튼을 눌러 편집을 시작한다.
아래 그림에 화살표가 가리켜놓은 버튼을 클릭 하면 개체 추가가 뜨는 데 (이미지 -> 내 이미지 업로드)이런 순서로 클릭해본다. 그리고 내가 만든 스킨을 추가한다.


스킨을 적당한 크기로 크게 한 다음 스킨에 미리 만든 버튼을 추가한다. 버튼에 링크를 단다.
(TiP)
링크를 달 때, 해당 메뉴에 필요한 게시판이나 갤러리가 없다면
(블루웹)*가입이나 서비스 무료 (*옆의 링크에 있는 서비스는 무료서비스입니다) http://db.blueweb.co.kr/bluecgi/rIndex.html
에서 만들어봅시다.
4. 내가 이미지 업로드로 추가한 미니홈피 스킨에 사진이나 링크를 넣어본다.
5. 디자인 편집이 끝났으면 "게시"버튼을 눌러서 완성해본다.

(아티 무료 홈페이지 만들기 서비스 TiP) "홈페이지 추가"버튼을 누르면 홈페이지 링크도 같이 생성됩니다. 그리고 평생 사용가능한 무료 서비스입니다.

posted by 새연(saeyeon)

미니홈피 오픈

분류없음 2017.11.18 16:29

http://saeyeon1239.aty.kr/1510654855087/main#

이번에는 나만의 미니홈피를 제가 직접 만들어보았습니다!

 

[사진으로 미리보기]

 

*다음 글은 알아두기 좋은 생활정보 게시판에 "미니홈피 혼자서 만들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새연(saeyeon)

[MV] _U-KISS (유키스) – RUN A WAY (Manhole/맨홀 OST) Part 5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어요^^

https://youtu.be/TYPFXOz7Ljw

posted by 새연(sae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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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자동차와 철·강철 제품을 수출한다. 1871년 비스마르크가 통일 독일제국을 건설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많은 영토와 모든 식민지를 잃었다. 히틀러가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유발되었다. 히틀러는 600만 명의 사람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 1949년 동서로 분할되었다가 1990년에 통일되었다. 현재 EU 회원국 간의 결속을 통해 서유럽과의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수도
베를린
시간
11월 08일 10시 22분
날씨
구름많음 5℃/8℃
언어
독일어
면적
357,104㎢
국가번호
49

요약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자동차와 철·강철 제품을 수출한다. 1871년 비스마르크가 통일 독일제국을 건설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많은 영토와 모든 식민지를 잃었다. 히틀러가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유발되었다. 히틀러는 600만 명의 사람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 1949년 동서로 분할되었다가 1990년에 통일되었다. 현재 EU 회원국 간의 결속을 통해 서유럽과의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위치
유럽중부
인구
80,722,792명 (2016)
수도
베를린
면적
357,104㎢
공식명칭
독일 연방 공화국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기후
대륙성기후, 해양성기후
민족 구성
게르만족(92%), 터키인(2%), 기타
언어
독일어
정부/의회형태
연방공화제 / 다당제&양원제
종교
로마가톨릭(34%), 개신교(34%), 이슬람교
화폐
유로 (€) 환율계산기
국화
수레국화
대륙
유럽
국가번호
49
GDP
3,494,898,000,000
인구밀도
226명/㎢
전압
230V / 50Hz
도메인
.de

본문 이미지 독일의 국기

독일의 국기

수도는 베를린이다. 국민의 대다수는 게르만계이다. 공식 언어는 독일어이고, 종교는 그리스도교(프로테스탄트교, 로마 가톨릭교도 이외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가 있다. 통화 단위는 유로(#128/€)이다.

영토의 북쪽은 대개 평평하고, 동쪽과 중부지역은 구릉지대이다. 남쪽 지방은 바이에른 알프스 산맥이 솟아 있다. 라인강 분지가 독일의 중부와 서부 지역을 차지한다. 그 외 엘베 강과 다뉴브 강, 그리고 오데르 강이 있다. 독일은 주로 서비스업과 제조업에 기반한 발전된 자유 시장경제 체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자동차와 철·강철 제품을 수출한다.
국가의 수반은 대통령이고, 정부 수반은 수상이다. 상하 양원 의회는 연방제도의 중심이다.

게르만 부족들은 켈트족을 몰아내면서 BC 2세기경에 독일로 들어왔다. 로마인들은 그 지역을 정복하는 데 실패하였고, 그 지역은 AD 9세기에 카롤링거 왕조의 분할로 정치적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이 군주국가의 통치력은 약했고, 정치 권력은 점점 더 귀족들에게 이양되었으며, 봉건국가 형태로 조직되었다.
군주제는 10세기에 색슨족이 지배하면서 다시 부활되었다. 그리고 게르만과 이탈리아 북부에 중심을 둔 신성로마제국이 되살아났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가톨릭교 교황 사이의 계속된 갈등은 결국 제국의 멸망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것의 해체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해 가속되었다.

종교개혁은 독일과 유럽을 프로테스탄트와 로마가톨릭 지역으로 분리되게 하였고, 30년 전쟁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독일의 인구와 국경은 대폭 줄어들었고, 많은 봉건 제후들은 사실상 완전한 통치권을 얻었다.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프러시아에서 권력을 잡고, 1871년에 독일을 통일하여 독일제국을 건설했다. 독일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1918년에 해체되었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독일은 많은 영토와 모든 식민지를 빼앗겼다. 독일은 독일제국 당시의 많은 영토와 모든 식민지를 잃었다.

1933년에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가 되었다. 그는 나치 당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인 제3제국을 설립하였다. 히틀러는 전세계를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게 하면서 1939년에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그는 600만 명의 유대인과 수백만의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였던 홀로코스트에 대해 책임이 있었다.

1945년 전쟁의 패배에 따라 연합국은 독일을 4개로 분할하여 점령지역을 통치했다. 독일의 재통합에 대한 소비에트 연방과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독일은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주의공화국(동독)의 분단국가가 되었다. 전 수도였던 베를린은 분리된 채로 남았다. 서독은 경제적 번영을 이룬 의회민주주의 국가가 되었고, 동독은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는 1당 체제 국가가 되었다. 1952년 독일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ECSC)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고, ECSC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EU)의 전신이 되었다.

동독 공산주의 정부는 1989년에 평화롭게 무너졌고, 독일은 1990년에 재통일되었다. 통일에 대한 초기 행복감이 사라진 후, 전 동독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연방공화국에 통합시키기 위해 부유했던 이전 서독 사람들은 무거운 재정적 부담을 감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은 EU 회원국 간의 결속을 통해 서유럽과의 더욱 깊은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향한 움직임을 계속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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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데이터
지도 데이터 ©2017 GeoBasis-DE/BKG (©2009), Google, Inst. Geogr. Nacional
지도 데이터지도 데이터 ©2017 GeoBasis-DE/BKG (©2009), Google, Inst. Geogr. Nacional
지도 데이터 ©2017 GeoBasis-DE/BKG (©2009), Google, Inst. Geogr. Nacional

독일

자연환경
개요

남북 최대 거리는 북위 47∼55°사이의 약 850km이고, 독일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동서 최대 거리는 동경 6∼15°사이의 약 640km이다.

동·서로 접한 이웃 국가들처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지형학적 특징을 보인다. 지리학적으로 북독일평야·독일중앙고원·남부산악지방 등 3지역으로 구분된다.

독일의 북쪽 1/3 정도를 차지하는 북독일평야는 북쪽 해안에서 시작해 오레 산맥까지 펼쳐져 있다.

이 지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브레멘·함부르크·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이외에도 베를린·작센안할트·브란덴부르크·니더작센 주의 대부분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서북부로 이루어졌다. 대체로 빙하시대 동안 빙하가 녹으면서 형성된 이 지역은 거대하게 뻗어 있는 해안 평야로부터 완만하게 기복이 진 구릉지대, 수림지, 호수 습지, 황무지 등으로 이어지는 지형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의 평균고도는 해발 100m가 채 되지 않는다.(빙하작용)

북부지역은 농업(특히 곡물 재배)·낙농·가축사육에 매우 적절하다.

또한 이전에는 철이 많았으나 현재는 석탄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이와 같은 조건들은 이곳의 많은 강·운하와 함께 이 지역의 부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엘베 강베저 강이 내륙 해항인 함부르크와 브레멘을 통과하여 흐르며, 유럽 최대의 내륙수로인 라인 강은 인구가 밀집되고 고도로 공업화된 루르 지방에서 바다로 나가는 통로가 된다.

본문 이미지 라인 강(Rhine River)

라인 강(Rhine River)

흔히 독일중앙고원으로 알려진 독일의 1/3에 해당하는 중부지역은 삼림이 우거진 산마루의 저지대, 강 유역, 고원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적 지형을 보인다.

이 지역은 헤센·라인란트팔츠·자를란트·튀링겐·작센 주의 전부 또는 대부분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니더작센·작센안할트·브란덴부르크 주의 남쪽 부분들에 이른다. 독일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면서 번창한 공업지대인 헤센 남부의 라인-마인 지역 일부와 인구가 희박한 오지의 일부도 이곳에 포함된다. 이 지역에서는 목재가 중요한 자원이며, 비교적 최근의 지질연대에 발생한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구역은 중요한 광물 공급원이다.

이 지역 안의 골짜기에서는 곡물이 재배되고, 기후조건이 허락하는 곳에서는 포도주용 포도가 재배된다. 그 밖의 구역에서는 풍부한 수력전기가 공급되고, 수상·철도·도로 교통이 편리해 광산업·제조업·가공업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의 나머지 1/3에 해당하는 남쪽의 남부산악지방은 사실상 쥐라 산계의 동북 연장부다. 마인 의해 독일중앙고원으로부터 분리된 이 지역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와 바이에른 주의 대부분을 점한다. 마인 강과 네카어 강 유역으로 둘러싸인 부분은 낮은 구릉, 대지, 골짜기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은 풍부한 농업지대이며, 또한 비교적 고립되어 있어 잘 보존된 옛 도시들이 많다. 남부산악지방의 대부분은 쥐라 산맥 최북단의 2개 지맥으로 형성되어 있다. 서쪽 지맥은 그곳을 덮고 있는 거대한 전나무들이 거무스름하게 보여 슈바르츠발트(검은 숲)로 흔히 알려져 있다. 동쪽 지맥은 슈바벤쥐라 산맥과 더 북쪽의 프랑켄쥐라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의 일부에서는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의 지질층이 뚜렷이 나타난다.

남부산악지방의 가장 동쪽 부분에는 보헤미아 숲과 슈바르츠발트 삼림지대가 있으며, 독일의 남쪽 국경에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바이에른알프스 산맥이 있다. 바이에른알프스에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추크슈피체 봉(2,962m)이 있다.

본문 이미지 바이에른 알프스(Bayerische Alpen)

바이에른 알프스(Bayerische Alpen) 알프스 중앙 산맥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국경에 있는 북동쪽 지맥

수계

독일 지형은 북쪽 해안에서부터 동남부의 바이에른 고원과 알프스 산악지역으로 가면서 고도가 계속 높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강이나 지류들이 북쪽으로 흐르며, 라인·엠스·베저·엘베 강 등을 거쳐 북해로 들어간다.

폴란드와의 국경 대부분을 이루는 오데르 강과 그 지류인 나이세 강은 북쪽으로 흘러 폴란드를 통과하여 발트 해로 들어간다. 바이에른 지방으로 흐르는 강들은 동쪽을 향해 흐르는 도나우 강과 합류한다.

독일에는 비교적 호수가 없는 편이다.

동북지방의 후빙기 저지대에 형성된 얕은 호수들에 물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 이 지역의 가장 큰 천연호수는 빙하퇴적물이 쌓여 이루어진 바히젤에 있는 뮈리츠 호(114㎢)이다. 몇몇 작은 호수들이 니더작센 주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 산재해 있고, 나머지는 오버바이에른의 가장 동남쪽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호수들의 주변 경관은 두드러지게 아름답다. 독일 최대 호수로 최장 길이가 64km나 되는 콘스탄츠 호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도 걸쳐 있다.

토양

경작이 가능한 토지에서는 대부분 농작물을 재배하지만, 매우 비옥한 땅은 비교적 적다.

대규모의 곡물 생산이 부적절한 땅은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토양은 대부분 모래와 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부와 서부 일부지역은 황토, 최북단과 최남단은 점토와 습지로 덮여 있다.

기후

위도상 상당히 북쪽에 위치하고 영토의 대부분이 대서양에 있는 따뜻한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기에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대체로 온대기후의 혜택을 입고 있다.

혹독한 추위가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는 드물며 강우량이 풍부하여 농작물 재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서유럽 전역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독일의 기후도 멕시코 만류에서 발생해 서쪽으로 흐르는 따뜻한 해양성기후가 유럽 동북부로부터 이동해오는 매우 찬 기단과 충돌할 때 갑작스런 날씨 변화를 보인다. 북해발트 해를 향한 해안선 때문에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독일 서북부와 저지대는 주로 습하며 알맞은 온도를 갖춘 대기의 영향을 받는데, 이 대기는 편서풍을 타고 북해로부터 내륙쪽으로 옮겨간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대기는 적당히 따뜻한 여름과 온난한 겨울 날씨를 누릴 수 있게 하지만 높은 습도, 긴 장마철, 서늘한 계절에 안개가 끼는 등의 나쁜 점도 동반한다. 유라시아 내륙을 향해 평야가 펼쳐지는 동쪽으로 갈수록 강수량은 감소하고, 가장 따뜻한 달과 가장 추운 달의 평균 기온차가 커진다. 중부와 서남부 지역의 구릉지대에서는 대륙성기후 때문에 한서의 차이가 보다 뚜렷해지고, 동남부 고원 및 대지 구역에서는 그 차이가 더 심하다. 산맥에서는 비가 많고 서늘한 기후를 보이며, 서쪽을 향한 비탈에서는 해양성 대기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

연평균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북독일평원에서는 510∼710㎜, 독일중앙고원에서는 710∼1,505㎜, 알프스 산악지역에서는 1,989㎜가 넘는다. 가장 추운 달인 1월의 평균기온은 북부 저지대에서는 -3∼1℃로 변화하며, 고원지역에서는 고도에 따라 -6℃까지 떨어진다. 7월 평균기온은 16∼19℃에 이르며 깊숙한 강 골짜기에서는 기온이 약간 더 상승한다.

동·식물

중부 유럽을 가로질러 대략 남북으로 자리잡은 형태인 독일의 동·식물군은 주변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빙하작용을 받은 저지대는 원래 오크나무·보리수나무·너도밤나무·자작나무 등의 혼합낙엽수림으로 주로 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이 나무들 중 너도밤나무와 자작나무만이 북독일평야 일부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튀링겐 분지의 가장자리에 있을 뿐이며 오크나무는 별로 없다. 이들 원시림의 벌목 후, 독일은 체계적 재식림에 앞장섰으나, 대부분 젓나무·가문비나무·소나무 등을 비롯해 빨리 성장하는 침엽수를 심어 지금은 침엽수가 모든 종류의 낙엽수보다 수적으로 크게 우세하다.

과거 사회주의권이었던 독일 동부와 이웃 국가들에서 규제되지 않은 채 수십 년에 걸쳐 방출된 산업공해로 인해 삼림자원이 심하게 손상되었다.

사과·배·복숭아·버찌·서양자두·살구·마르벨르 등의 과실수와 호두나무·밤나무·개암나무가 널리 분포한다. 그러나 포도나무처럼 이 나무들도 서부와 서남부 지역에서 가장 무성하게 자란다. 딸기, 블루베리, 검은나무딸기, 넌출월귤, 알이 잘고 씨가 없는 건포도가 모든 지역의 삼림과 초원에 풍부하다.

산재한 부락이 있을 뿐인 거대한 삼림구역과 산악지형 때문에 인구가 밀집되고 고도로 발달된 이 나라에는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사슴·멧돼지·산토끼·꿩 등과 알프스 산맥지역의 샤무아·알프스아이벡 등 사냥용 동물이 대부분의 지역에 많이 있는데, 엄격한 사냥법으로 이 동물들을 보호하여 그 수를 유지하고 있다. 야생 곰과 늑대는 멸종되었으나 스라소니·말코손바닥사슴·살쾡이는 전후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긴털족제비, 담비, 족제비, 해리, 오소리, 희귀한 수달과 살쾡이 등은 모두 토종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파충류로는 도롱뇽·무족도마뱀 등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도마뱀과 뱀 등이 있는데, 이 중 독이 있는 것은 북살무사뿐이다.

흰황새·가마우지·부엉이·물수리 등은 거의 사멸되었으나 검독수리와 왜가리는 늘었다.

국민민족

독일어를 쓰는 민족들은 민족적 기원이나 정치적·문화적 유산 면에서 서로 매우 이질적이다.

1871년 최초로 통일된 독일 국가인 독일제국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방언을 가진 언어, 약간의 문화적 유사성, 혼란스러운 정치적 제휴 등으로 매우 느슨하게 결속된 형태에 불과했다. 이때에는 어떤 의미로든 독립국가의 지위 혹은 국민적 의식을 형성할 만한 동족간의 결속 정도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어서 분명히 프랑스나 영국 같은 형태의 단일민족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늘날의 독일은 대체로 독일제국의 핵심이었던 로마 제국의 게르마니아와 카롤링거 왕조 하의 동프랑크 왕국의 영토 대부분에 걸쳐 있지만 민족적·언어적 하위구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경계선을 초월하게 된다.

로마 시대와 중세 초기부터 6개의 주요 독일 민족집단이 역사적으로 각각의 지역을 고수해왔다. 이 6개의 민족에는 서남부의 바덴·슈바벤 지역의 알마만족, 남부의 바이에른족(티롤족이 그 지파에 속함), 중부의 오버프랑크족, 현재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니더프랑크족, 현재의 튀링겐·작센·작센안할트 주의 작센족, 유틀란트 해안 근처의 섬들과 니더작센 주의 프리지아인 등이 있다.

9세기에 서쪽의 식민지화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민족집단은 메클렌부르크족·오버작센족·브란덴부르크족·슐레지엔족·포메른족·프로이센족, 발트 해 독일인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소수민족 집단은 중세 초부터 독일 서부에 거주해온 유대인과 엘베 강 동쪽의 식민지화된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슬라브인, 그리고 17세기 말엽 프랑스에서 개신교도들을 박해하여 독일 땅으로 들어오게 된 위그노들이다. 비교적 근대에 독일로 들어온 소수민족 집단으로는 폴란드인, 10월 혁명 후에 이민 온 러시아인, 동유럽에서 온 수많은 '난민',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발칸인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입된 이민 노동자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는 와중에서 노동력 수요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터키, 발칸 반도,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출신의 이민 노동자가 대거 유입되었다. 독일 통일 전 동독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의 영구 이민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표면상 교육 및 훈련 목적으로 약 9만 명의 노동자가 베트남·앙골라·쿠바·모잠비크 등지에서 입국했다.

현재 독일내의 이민 노동자는 독일 전체 인구의 약 6%를 점하면서 실질적인 비독일계 소수민족 집단을 이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내 그리고 동·서독간 독일계 민족의 이주사도 특기할 사실이다(인구이동). 전후 중유럽·동유럽 각국에서 1,200만 명이 넘는 독일계 민족이 추방되어 독일로 밀려들어왔으며, 연합국에 의해 동·서독으로 분단된 후 수년 동안 동독 주민 약 200만 명이 서독으로 이주해 서독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동독 주민의 서독 이주는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생기면서 중단되었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독 주민들이 더 잘 사는 서독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다.

언어

독일의 방언 구분은 한때 각 방언들이 시사했던 민족적·문화적 구별을 위해 매우 중요했다.

대중교육과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방언간의 차이가 표준화·균일화되고, 독일에서의 국내 이동과 함께 잘 교육받고 사회적 지위 이동이 빠른 젊은 계층에서 '사투리 어조가 없는'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각 방언은 지금까지 계속 남아 있다. 현재 방언들은 농촌지역 인구와 도시의 토박이 거주자들 사이에서 사용된다.

표준 독일어는 기원으로 보아 일종의 혼종어로서,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 요소에서 파생되었으면서 북부 독일 지역에서 우세한 방언들의 음성적 특성을 갖고 있다.

표준 독일어의 발음은 사실 사람들이 임의로 절충하여 쓰게 되면서 19세기 후반에는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다.

3가지 주요 방언 지역은 북독일평야, 독일중앙고원, 남부산악지방 등으로 분류되는 주요 지형학적 지역과 거의 동일하다. 각 지역의 방언은 북쪽으로부터 순서대로 저지 독일어, 중앙 독일어, 고지 독일어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각 다시 수많은 지역 방언들로 세분된다.

종교

숫적으로 프로테스탄트가 로마 가톨릭교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라인란트팔츠·바이에른 주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우세한 반면 북부의 경우 대부분이 프로테스탄트이다. 이슬람교와 동방정교회 교도들도 약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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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개요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다.

이미 독일 통일 전인 1980년대 후반에 서독의 국민총생산(GNP)은 세계 4위를 기록했으며, GNP의 1/3을 수출했다. 1990년 독일 통일은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례없는 성장의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독일 통일 후 진행된 동독 지역의 민영화는 시장경제 체제를 지향한 서독과 역동적이지 못한 중앙경제 체제를 고수한 동독 사이의 경제 발전의 격차와 불평등으로 인해 대량 실업 등 대혼란을 야기시켰다. 과거 동독 정권이 몰수했던 토지와 재산의 소유권 문제 해결은 1990년대 초엽에 시작되었다.

독일연방공화국 경제의 힘은 주로 제조업에서 나온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로 가장 크고, 전체 노동자의 약 1/3이 제조업에 종사한다. 주요 산업 중심지는 서부의 루르 계곡이다. 주요 생산품으로는 석유제품, 강철 주괴·주형 제품, 압연강철, 선철, 시멘트, 석탄·석유 가스, 화학약품·수지·플라스틱, 비료, 자동차·철도기관차·차량·선박, 가전제품, 합성·면·모 섬유와 직물, 기계류·수공구·섬유기계·농기구·건축장비·엘리베이터, 시계류·카메라·전자제품 등이 있다.

전체 산업체의 가운데 일부 광산·철강·석유가공·자동차 제조부문의 업체들만 고용 규모가 500명을 넘을 뿐이며, 절반 정도는 고용 규모가 50명에도 채 못 미치는 중소기업들이다.

노동자는 완전히 조직화되어 있으며, 노사간 및 노동조합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 법원도 있다. 자동화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된 노동자들을 위한 직업 재훈련 및 전직 프로그램은 선구적이다.

독일의 경제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로서, 시장에서의 정부·기업가·노동자·금융의 역할에 대해 명백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정부는 주로 조정 기능을 하며, 국가 경제와 사회에 필수적이지만 이익을 내지 않는 상품 및 서비스 부문에만 직접적으로 관여하는데, 특히 수송·우편·전기통신·무연탄광업·농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또한 정부는 세금과 기부금으로 재원을 충당해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관리하는데, 여기에는 건강보호, 실직·장애 보상, 출산·양육비 보조, 직업 재훈련, 연금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연방정부 외의 경제계획 기관으로는 독립적인 독일연방은행, 고용주협회, 노동조합 등이 있다. 경제정책위원회는 연방정부의 경제·재무 각료들, 각 주 정부의 대표 1명, 자치체 대표들 등으로 구성되며, 연방은행이 참여하는 가운데 통일된 금융정책을 마련한다. 비슷한 구성의 재정계획위원회는 연방·주·지방 등의 재정정책들을 조정한다.

정부 차원에서의 모든 주요수입원은 세금이다. 연방정부가 총수입의 반이 약간 안 되는 몫을 가지며, 그 나머지를 주 정부와 지방 정부들이 사용한다. 소득세·법인세·일반거래세·원유세·관세 등 5종류의 세금이 총세입의 4/5를 차지한다.

자원

비교적 천연자원이 적은 편이며, 따라서 주요 공업국가로서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해야만 한다.

매장량이 풍부한 광물로는 역청탄과 갈탄을 꼽을 수 있다. 역청탄이 가장 풍부한 곳은 루르 광산이며, 그에는 못 미치지만 자르·아헨·이벤뷔렌 탄광에서도 풍부히 얻을 수 있다. 갈탄 주산지는 쾰른 서부, 할레 동부, 라이프치히 남부 및 서남부,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주의 남부 루사티아이다. 이밖에 매장량이 많은 광물로는 하르츠 산지 주변에서 채굴되는 암염과 칼리가 있다.

금속광물 채굴은 서독 지역에서는 경제적 이유로 대부분 중단되었고, 동독 지역인 만스펠트에서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졌던 구리 채굴·가공과 과거 소련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졌던 오레 산맥의 우라늄 채굴·가공도 통일 이후에는 중단되었다. 독일 서북부에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소량 매장되어 있다.

용수(用水) 공급은 다른 모든 산업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

라인 강과 같은 큰 강들이 으뜸가는 물 공급원이며, 산지의 저수지들이 이를 보충하는 구실을 한다. 예컨대, 하르츠 산지는 저 멀리 브레멘까지 뻗는 북독일평야의 대부분 지역에, 오레 산맥은 중부 산업지역에 물을 공급해준다.

본문 이미지 하르츠 (Harz)

하르츠 (Harz) 독일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산지

농업

 

다른 모든 경제부문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분단은 동·서독 지역의 농업 발전에 극적인 차이를 낳았다.

서독에서는 여전히 소규모 가족농장이 발전해, 1980년대 후반에 50ha가 넘는 경지를 가진 농가는 전체 농가의 약 5%에 지나지 않았고, 이들이 전체 경지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3%에 불과했다. 반면 원래 대토지가 많았던 동독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말 소련군의 점령 이후 토지개혁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대토지의 분할 또는 국영농장 편입이 이루어졌다.

소농도 1952∼60년 강력한 정치적 압력하에 사실상 모두 집단농장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농업 생산이 점차 대단위 전문 국영·집단 농장으로 집중된 결과 독일 통일 전인 1980년대 중반 무렵 국영농장과 집단농장의 평균 경작지는 무려 4,571ha에 이르렀다. 농업 노동자가 줄어들었음에도 동독은 이러한 대규모 경작지와 현대적 농기구,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이러한 동독 지역의 대규모 기업농과 서독 지역의 소규모 가족농 구조의 조화는 통일 이후 독일 농업의 앞길에 놓인 난제이다.

비옥한 지역에서는 주로 밀·보리·옥수수·사탕무 등을 재배하고, 북독일평야와 독일중앙고원의 척박한 토양에서는 전통적으로 호밀·귀리·감자, 그리고 사료용 비트를 재배한다.

농업 기술의 발전은 농작물의 지역별 분포 양상을 바꾸어놓았다. 예전에는 독일중앙고원 북부 가장자리의 황토 지대처럼 비옥한 토양에서만 경작되었던 사탕무를 지금은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화학 비료가 보급되면서 기계 경작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모래가 많은 토양이 성가를 크게 높였다. 예컨대, 북독일평야에서 감자 대신 사료용 옥수수가 널리 재배되고 있다.

지역적 측면에서 경지는 일반적으로 옥수수 등의 곡물 재배지와 영구 목초지로 대별되는데, 둘 다 가축 사육의 기반이 된다.

낙농업은 과거에는 기후가 온화한 북부 해안 저지대와 알프스 산기슭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소규모 농장이 주류를 이루는 전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 가축 사육은 추운 겨울 때문에 보통 축사를 이용한다. 동독에서는 사료를 구하기가 쉽고 도시 시장에 인접한 경지에 위치한 대규모 농장들에서 우유를 집중적으로 생산했다.

닭, 돼지, 식육용 송아지 등의 사육은 동·서독을 막론하고 경지와 분리되면서 갈수록 대단위 사육장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농산물 특산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서독 지역의 도시 근교 농업이다. 이곳에서는 과일·야채·화훼 등이 생산된다. 따뜻한 서남부 저지는 담배와 종자 수수 재배에 알맞고, 함부르크 남쪽의 엘베 습지와 베를린 남쪽의 슈프레발트 습지처럼 야채를 재배하기에도 좋다.

독일 남부는 풍부한 과일 생산지이다. 그 밖의 주요 농산물 특산지로는 함부르크 남쪽 엘베 강변의 '알테스란트', 포츠담 근처 하벨 호 지역과 할레 지역 등이 있다. 드레스덴 근처의 엘베 강 골짜기 언덕 경사면에서도 포도주용 포도가 일부 생산되지만 포도원은 주로 서부, 특히 라인·모젤·마인·네카어 강의 골짜기와 그 근처에 있다.

 

산업

 

독일의 주요 에너지원은 석유이다.

원유의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내 생산은 소량에 머문다. 항공·선박·철도를 통한 석유제품 수입량도 상당히 많다. 1950년대 중반까지만 특히 함부르크 해안이 정유업으로 이름을 높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 경제의 괄목할 만한 발전은 특히 바덴뷔르템베르크(아우디사, 다임러벤츠사), 니더작센(폴크스바겐사), 헤센(오펠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포드사, 오펠사), 바이에른(BMW), 자를란트(포드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동독에서 생산되었던 공해가 심한 트라반트·바르트부르크 자동차의 생산은 중단되었으며, 폴크스바겐사·오펠사·다임러벤츠사가 재빨리 진출해 그 자리를 차지했다(자동차산업). 한때 독일의 주요 산업으로 손꼽혔던 조선은 크게 쇠퇴했다.

본문 이미지 폭스바겐사(Volkswagenwerk AG)

폭스바겐사(Volkswagenwerk AG) 볼프스부르크, 독일 전세계 최대 규모의 폭스 바겐 공장의 모습

독일은 이미 19세기 말에 전기·전자 장비 제조업 강국이 되었다(전자공학). 한때 그 중심지는 지멘스사, 아에게사(AEG), 텔레푼켄사, 오스람사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본거지였던 베를린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들 기업의 생산 기지가 남부의 뉘른베르크-에를랑겐, 뮌헨, 슈투트가르트 등지로 옮아갔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은 독일을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굴지의 전기·전자 제품 수출국으로 만들었다. 동독 지역에서도 동베를린을 중심으로 전기·전자 제품의 생산이 계속되고 있지만, 드레스덴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동독은 컴퓨터 제어 로봇과 같은 첨단 장비를 사회주의 국가들에 공급한 주요 수출국이었지만, 독일 통일 당시 대부분의 제조 시설은 이미 낙후되어 있었다.

독일은 합성염료의 발견 등으로 19세기 말에 화학제품 강국이 되었다.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석탄을 대신해 석유가 현재 독일 화학산업의 기본 원료로 쓰인다. 생산기지는 대부분 라인 강과 그 지류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데, 특히 루트비히스하펜레버쿠젠 등지가 유명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라인 강변에도 화학공장이 즐비하게 서 있으며, 루르 지역에도 생산기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독의 경우 대부분의 화학공장이 루사티아와 할레-라이프치히의 두 갈탄 광산에 있었지만, 공해 물질을 지나치게 많이 배출하는 일부 공장들이 통일 후 폐쇄되었다.

독일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섬유산업은 해외로부터 도전을 받아 지금까지 시련을 겪고는 있지만 여전히 주요 산업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주요 생산기지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묀헨글라트바흐·부퍼탈)과 남부에 있다.

통일 후 동독의 작센과 튀링겐에 있던 많은 섬유공장들이 폐쇄되었다.

독일은 특히 광학·정밀 산업에 강하다. 독일 통일과 더불어 서독의 차이스사와 그 제휴사인 유리제조 업체 쇼트사가 예나의 모기업을 인수함으로써 모기업의 생산활동이 감축된 규모로나마 지속되고 있다.

금융

독일의 은행 체계는 중앙은행과 이를 보완하는 민간 상업은행들로 이루어져 있다.

독일 금융의 중추 기관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 있는 독일중앙은행으로서, 통화를 발행하고 통화의 유통을 감독한다. 정부가 재정 조달을 위해 인쇄기로 통화를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일어난 1922∼23년 인플레이션의 재발을 막기 위해 설립된 독일중앙은행의 최대 특징은 정부의 통제로부터 독립된 기구라는 데 있다. 서독을 유럽의 금융 강국으로 만든 공로도 치밀한 여신 통제 정책과 확고한 마르크화 환율 정책을 견지한 독일중앙은행에 있다.

독일중앙은행은 1991년 연방정부의 입장과는 상반되게 동독 지역에 대한 정부의 추가 지원금은 차입금이 아닌 세금 인상을 통해 조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꺾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독립성을 보여주었다. 각 주에서는 주 중앙은행이 독일중앙은행을 대표한다.

독일의 민간 상업은행은 수백 개에 이르며, 그 중에서도 도이치은행·드레스드너은행·코메르츠은행이 '3대 은행'으로 꼽힌다.

본문 이미지 도이치 은행(Deutsche Bank)

도이치 은행(Deutsche Bank) 독일의 3대 은행 중 하나인 도이치은행 건물

이들 은행의 본사 고층 건물은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놓았다. 민간 은행들은 통상적인 은행 업무 외에도 사기업의 발전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 까닭에 산업 금융의 조달이라는 측면에서 프랑크푸르트·뒤셀도르프 및 기타 도시의 증권거래소가 미치는 영향력도 다른 나라의 경우보다 그만큼 떨어진다.

무역

일찍이 서독은 1952년에 무역흑자를 달성했고, 무역수지 면에서 1986년에 미국을, 독일 통일 직전인 1989년에는 일본을 따라잡았다.

그러나 독일 통일 후인 1991년 무역흑자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공산품 수출 물량이 동독 지역의 신규 수요를 충당하는 데 돌려짐으로써 불가피하게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독일의 주요 무역 상대국은 유럽공동체(EC) 회원국들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및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미국·일본 등이다. 상대적으로 경화 부족에 허덕이는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수출은 줄어들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은 각종 기계류와 자동차, 전기·전자 장비, 화학제품, 그리고 포도주·식료품 등이다.

수입 품목도 이와 매우 유사하지만 산업용 원료 및 반제품이 추가된다. 동독의 경우 사회주의 국가들에 선진 산업장비, 전자제품·선박·철도차량을 전문적으로 수출했다. 이들 수출품의 결제 수단은 루블화였고, 이를 통해 얻은 루블화로 식품·석유·원료·반제품을 수입했다. 그러나 옛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경제 통합 이후 사실상 경화로 수출 대금을 지불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으므로 동독의 산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동독은 서독과도 폭넓게 무역을 하는 한편으로 서독의 중재로 EC 회원국들과도 활발히 교역을 해 'EC 명예회원국'으로 불렸지만, 이러한 수출의 대부분은 단지 경화를 얻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통일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소비에트 경제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는 달리 동독은 1990년 통일과 더불어 통일국가 독일의 일부로서 EC 정회원국으로서의 이익을 자동적으로 얻게 되었다.

운송

유럽 각지를 이어주는 교차점에 위치한 주요 공업국으로서 운송체계가 광범위하게 잘 갖추어져 있다.

연방 철도망이 몇 개 주요 노선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주요 도시 사이를 초고속으로 달린다. 자동차 도로망의 포장률은 거의 90%에 이르며, 그 중 약 3%가 제한접근 고속도로(아우토반)이다. 강들과 운하를 비롯한 내륙 수로의 총길이는 6,650km를 넘는데, 궁극적으로 발트 해, 북해, 흑해까지 연결되도록 설계되었다. 주요 항구는 함부르크·브레머하펜·뤼베크·로스토크에 있으며, 베를린·본-쾰른·뮌헨·뒤셀도르프·함부르크·라이프치히에 주요 공항이 있다.

본문 이미지 아우토반

아우토반

정치와 사회연방 정부·의회

정부의 구조와 권한은 기본법(Grundgesetz)에서 나온다.

이 법은 서독 지역에 진주한 서방 점령국들의 군사 정부가 독일연방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공식 승인한 후, 지방 의회들이 연방 결성에 동의하여 1949년 5월 23일 서명·공포되었다(연방제도). 완전한 주권의 확정은 1955년 5월 5일에 이루어졌다. 기본법의 23조는 동독 지역의 궁극적 합병과 통일 독일의 회복을 규정했는데, 1990년 10월 3일 통일이 실현되었다.

국가의 공식 수반은 대통령이며 임기는 5년이다.

본문 이미지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

요아힘 가우크(Joachim Gauck) 독일의 제 11대 대통령

대통령은 연방 하원의원 및 같은 수의 주 의회 의원들로 구성된 연방 특별 회의에 의해 선출된다. 대통령은 연방 총리 및 총리가 선임한 내각을 임명하는데, 총리의 권고를 받아 내각을 해산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연방 총리나 연방 하원의원을 해임하거나 연방 의회(하원)를 해산시킬 수 없다. 집권 정부의 수반은 총리이며, 대통령이 지명하면 연방 하원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선출된다.

총리에게는 상당한 독립적 권한이 부여되며, 정부 정책을 주도한다. 총리는 연방 하원 과반수 찬성으로 그의 승계자 선출이 확실시되어야만 역시 연방 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해임될 수 있다.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불안정을 피하기 위한 보호장치로 시행된 이 '건설적인 불신임투표' 때문에 총리나 그의 정부가 물러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본문 이미지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의 제 8대 총리

각료의 수는 일정하지 않다.

대부분 연방 하원의원이며, 집권 여당 또는 집권에 참여한 연립 정당들로부터 그 구성 비율에 따라 선임된다. 하지만 총리는 특정한 기술분야에서 정당과 무관한 사람을 지명할 수도 있다. 내각 부처에는 외교정책, 재무, 국방, 내무, 법무, 통상, 체신(우체국·전화·전보·일부 방송업무), 청소년·가정·여성·보건, 경제협력, 교육·과학, 노동·사회문제, 지역 계획·건축·도시개발 등이 있다.

연방 하원(분데스타크)은 독일 정치 체제의 초석이다.

통일 독일의 연방 하원은 1990년 12월 2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선출된 연방 하원의원 662명으로 출범했으며, 의원수가 약간 변동될 수 있다. 연방 하원의원은 4년마다 열리는 총선이나 특별 중간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이때 유권자들은 지역구 의원을 직접 선출할 뿐만 아니라, 지지 정당에 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비례대표제 의원도 선출한다. 이는 연방 하원의 교섭단체를 주요 정당을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한편, 국가·주·정당, 그리고 일반 유권자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후자의 기능으로 비례대표제로 진출한 연방 하원의원은 지역선거구 법령에 따른 엄격한 지역 대표제 특유의 지방색 경향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작용한다. 연방 하원의 권한은 연방 상원(분데스라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연방 상원에서 각 주는 자신의 권리와 특전을 보호하기 위해 권한을 행사한다.

연방 상원은 크기와 인구에 따라 각 주 정부가 지명하는 3∼5명의 의원들로 구성된다. 예컨대 신설 주인 베를린 주의 경우 4명의 상원의원을 지명해 파견한다. 연방 상원의원은 자신의 출신 주 정부의 지침을 따라야만 한다. 모든 법률은 연방 하원에서 제정되지만, 특히 재정·행정 분야의 입법과 같이 각 주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기본법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의 경우에 한해서는 연방 상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연방 상원은 연방 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을 거부함으로써 제동을 걸 수는 있으나, 위와 같은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닐 경우 연방 하원은 다수결로 연방 상원의 표결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대통령의 해외 체류 기간이 연장되거나 사임할 경우 상원의장이 그 권한을 대행할 수 있다.

지방선거들은 물론 4년마다 한 번씩 치러지는 총선과 주 선거에 대한 관심과 투표율은 대단히 높다. 국민들은 신문·텔레비전·라디오 등 대중매체들의 집중적 보도를 통해 정치적 쟁점들을 지속적으로 접하고, 정치적 사건들이 시시때때로 국민들 사이에 큰 관심사로 부각된다.

1970년에 선거권 취득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아졌으며, 투표권 행사가 강제된 것은 아니지만 투표율이 대단히 높다. 연방 하원의 임기 동안에도 각 주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되는 각종 선거는 연방 정부에 대한 여론의 풍향계 역할을 한다.

주·시 정부

법집행과 교육 기능은 어디까지나 각 주의 고유 영역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16개 주의 공동 협의기구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 정부 체제는 연방 정부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꼭 같아야만 하는 아니다. 13개 주는 주 정부 수반과, 주 장관들로 구성된 내각, 그리고 독자적인 주 의회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함부르크·브레멘·베를린처럼 시가 곧 주인 곳에서는 시장이 주 정부 수반이다. 또 시 상원은 지방 의회의 역할을 하고 시 관료는 지방 장관의 성격을 갖는다.

연방·주 법원

독일의 사법제도는 주 법원이 모든 예심·상소 재판을 맡고 최종심은 연방 법원이 담당한다는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다른 연방국가들과 다르다.

주 법원이 연방 법원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영역이 있기는 하지만, 연방 법원은 각 주 법원이 국법을 동일하게 적용하는지를 감독한다. 연방최고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하며 민사·형사 소송을 관장하는 일반 법원 외에, 행정·노동·사회보장·조세 문제를 관할하는 4개의 전문 법원이 있다. 예를 들어 3심제인 행정 법원은 다른 전문 법원의 관할 영역이 아닌 한 모든 비헌법적 성격의 민사소송까지 관할한다.

모든 법원이 자신의 관할권 내에서 정부의 조치와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검토할 수는 있으나, 위헌 선고는 오직 카를스루에에 있는 연방헌법재판소만이 내릴 수 있다. 어떤 법률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음을 발견한 법원은 반드시 소송 절차를 일시 정지시키고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의 판단을 요청해야 한다.

본문 이미지 연방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

연방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 독일 남부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독일의 헌법 재판소

중대한 형사소송의 경우에는 예심법원에 배심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6명의 심사원이 배석된다. 이들은 미리 정해진 명단에서 추첨에 의해 선택되는데, 전문 법관들과 함께 피의자의 범죄사실과 처벌에 관한 모든 문제를 결정한다. 이들은 형사재판 이외의 재판에 참여하기도 한다.

정당

1933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을 초래한 한 원인이기도 했던 정당 난립 현상은 서독 초창기 이래 점차 통합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군소 정당들은 보다 큰 정당과 제휴하거나, 유명무실하게 존재로서 수명을 유지하거나, 아예 사라져가고 있다. 현재 통일 독일에는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정당은 사실상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과 사회민주당(사민당) 등 2대 정당이 있을 뿐이지만, 이 두 정당 모두 혼자 힘으로는 연방 하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

1966년 이래 소수정당들과 연합하지 않고 집권에 성공한 역대 독일 행정부는 없었다. 소수정당이라도 5%의 득표율만 얻으면 연방 하원이나 지방 의회에 당을 대표하는 의원을 진출시킬 수 있도록 하는 '5% 원칙'은 극좌·극우 정당을 배제하고 분리파의 형성을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인 장치임이 현실 정치에서 입증되었다.

의석수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소수정당으로는 독교사회연합(기사당)·자유민주당(자민당)·녹색당·민주사회당(민사당)·연대90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녹색당은 1979년에 세계 최초의 환경 정당으로 출범한 지 20년 만인 1998년 총선에서 6.7%의 득표율을 기록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 27일 사민당과 이른바 '적·록(赤綠) 연정'을 구성해 집권세력으로 부상했다.

군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주권을 상실했다가 1955년 파리조약의 발효로 주권을 회복한 이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있다.

본문 이미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기

독일은 연합군이 자국 내에 계속 주둔할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연방군(분데스베르)이라는 통합방위군을 가짐으로써 서방 방위체제에 기여하고 있다. 연방군은 유럽 NATO군 병력 가운데 최대 규모로서 육군·해군·공군으로 나뉘며, '시민 방위군'이라는 구상에 따라 창설된 만큼 연방 하원을 통해 철저하게 민간 통제하에 놓여 있다.

장교와 사병은 민주주의 체제에서의 군대의 역할에 유념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남자는 누구나 징집 대상이며 18세에 시작하여 45세에 군역의 의무가 끝난다. 의무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기본법 제4조는 양심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양심적인 징집 반대자로 인정된 사람은 군 복무를 대신해 20개월간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

1990년 통일 후 양심적인 징집 반대자의 수가 그 전에 비해 거의 2배 늘어났다.

동독 인민군(폴크스아르메)은 통일과 더불어 연방군에 흡수되었고, 연방군 장교들이 최고 지휘관에 올라 그들이 지난날 적대 관계였던 NATO군에 동화되도록 감독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 및 서독과의 국경지대에 배치되었던 특수부대인 동독의 국경수비대는 공장 민병대와 더불어 무장해제된 후 해체되었다.

치안

전국적 규모의 연방 경찰군은 없으며, 치안은 주 고유의 영역이다.

각 주는 시 경찰대가 맡은 기능을 제외한 모든 기능을 담당하는 자체 경찰대를 갖고 있다. 연방 정부는 국가가 비상사태에 처할 때에는 주 경찰대는 물론 각 주가 비상사태를 대비해 훈련을 시키는 주 예비 경찰대에 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 한편 연방 정부는 특히 각 주의 안보에 해가 되는 행위나 주의 경계를 넘어서는 범법행위 등을 수사한다. 범죄자와 범법행위를 소탕하는 기구로 연방범죄기구가 있다.

동독의 인민경찰은 통일 후 해체되었고 소속 경찰들은 새로 편입된 주들의 경찰대로 흡수되었다.

동독 주민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던 '슈타지'로 널리 알려진 국가보안부도 해체되었다. 이미 통일 전 대중봉기 때 슈타지 소속 건물들은 주민들의 습격을 받아 붕괴되고 보관 서류들도 서독으로 옮겨졌다.

교육

6∼18세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무상 의무교육을 받는다.

교육행정은 각 주의 주요 권한에 속한다. 교과과정·필수과목·학습수준 등의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16개 주가 참여하는 상설 공동협의기구를 두고 있지만, 무엇을 우선 순위로 삼는가는 각 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과서와 부교재는 일반적으로 무료로 제공되며,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대해서는 재정 지원 등 여러 가지 지원이 이루어진다.

독일어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이 유치원을 일컫는 보편적인 용어로 정착할 만큼 현대 유아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취학 전 교육은 3세부터 가능하다.

6∼10세 어린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초등학교인 그룬트슐레(Grundschule)에 다닌다. 그룬트슐레를 마친 뒤에는 전통적으로 다음 세 과정으로 각자의 진로가 갈라진다. 첫째,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로 진학해 약 15∼16세까지 계속 기초교육을 계속 받은 다음 직업학교인 베루프스슐레(Berufsschule)에서 시간제로 견습공 등 직업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합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이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은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절반 미만에 이른다. 둘째, 실업학교인 레알슐레(Realschule)에 진학해 상업·사무 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중급 수준의 기업·행정·사무 능력을 쌓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전문 직업학교인 파흐슐레(Fachschule)에 입학하는 자격을 취득하는 이 과정에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1/3 미만이 진학한다.

셋째, 김나지움(Gymnasium)에서 9년 동안 고전·현대언어·수학·자연과학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대학으로 진학하는 과정인데,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약 1/4이 이 과정에 선발된다. 한편, 이처럼 어린이들의 진로를 너무 일찍 결정짓고 한번 선택한 진로를 도중에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와 같은 전통적인 과정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 주마다 영국의 종합 중학교에 해당하는 소수의 게잠트슐레(Gesamtschule)를 운영하고 있다. 게잠트슐레에 다니는 학생들은 보다 자유롭게 자신에게 알맞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특히 19∼20세기 초에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독일의 대학은 오늘날 학생수가 폭증하고 사회적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전통적인 대학 구조의 변화라는 힘겨운 요구에 직면해 있다.

대학에서 원하는 기간 동안 학업을 계속하거나 원하는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독일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꾸준히 대학을 증설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학과 동등한 수준의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인문 대학을 세우는 한편, 공학·교육·예술 분야 단과대학과 학교들을 종합대학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계공학·건축·디자인·예술·농학·경영학 등 어느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고등기술학교인 파흐호흐슐레(Fachhochshule)와 같은 새로운 전문학교를 만들었다.

1368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인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공부하든 1976년에 설립된 베스트팔렌의 하겐대학교에서 공부하든 그에 따른 사회적 위신의 차이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20세기 말 현재 97개가 넘는 종합대학교와 200개가 넘는 고등교육 기관들이 있다. 17세기에 폐지되었던 문학석사 학위가 부분적으로 부활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석사 학위는 없고 박사 학위만 수여된다.

보건·복지

세계 최고 수준의 매우 광범위하고 정교한 사회복지 제도를 자랑한다.

독일은 일찍이 1880년대에 의료·사고 보험, 노동자 수당·연금, 광부 보험 등을 포괄하는 사회보장법을 마련하기 시작해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후 독일의 사회보장법은 다른 국가들이 사회보장 제도를 마련하는 데 본보기가 되었다. 수입이 일정한 수준 이하인 모든 노동자는 반드시 의료·퇴직 보험에 들도록 강제된다. 인구의 약 90%가 가입되어 있는 의료보험의 경우, 의료비의 약 90%를 부담하는 까닭에 의료비 지출액이 서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

의료 수준이 높고 농촌 지역에서도 의료 혜택을 잘 받을 수 있다. 보건·위생 상태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영아사망률은 낮고 평균수명은 남자 73세, 여자 79.5세이다.

거의 전 인구가 노인·장애·미망인·질병·모성·산재·실업 수당의 혜택을 받으며, 전쟁미망인·고아·농부와 같은 특수층에게는 특별 수당이 지급된다. 임금의 일부를 떼어내 실업보험 기금을 운영하며, 한 자녀 이상을 둔 가정에는 수당이 지급된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전시의 부상으로 인한 장애자에게는 추가로 공공수당이 지급된다.

언론

독일은 가히 신문·잡지의 나라이다.

주요 도시마다 지방 잡지들 외에 두 개 이상의 지방 일간지를 거느리고,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마을 일간지를 갖고 있을 정도이다. 기본법에 따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며, 수백 개에 이르는 신문과 수천 개에 이르는 잡지의 재정상태는 부러울 만큼 좋다. 전국지로는 〈쥐트도이체 차이퉁 Die Suddeutsche Zeitung〉(뮌헨), 〈벨트 Die Welt〉(함부르크·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터 차이퉁 Stuttgarter Zeitung〉(슈투트가르트), 〈베스트도이체 알게마이네 차이퉁 Westdeuche Allgemeine Zeitung〉(에센),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Frankfurter Rundschau〉 등 세계 각지로 보급되는 유력 일간지들과, 엄청나게 많은 독자를 거느리며 8개 지역판을 내는 〈빌트-차이퉁 Bild-Zeitung〉(함부르크)과 같은 타블로이드판 일간지가 있다.

많은 시사주간지들 가운데 〈슈피겔 Der Spiegel〉의 권위와 지위는 각별하다. 〈슈피겔〉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창간된 이래 일관되게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관찰자이자 양심의 보루라는 편집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독일의 여론을 형성해 왔다.

본문 이미지 슈피겔(Der Spiegel)

슈피겔(Der Spiegel) 독일의 유명한 주간 뉴스 잡지사의 건물

텔레비전·라디오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1980년 중반까지는 공영방송만 허용되다가 1986년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민영방송이 허용되면서, 뉴스·오락 등의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영방송과 '부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영방송의 두 체제를 이루게 되었다. 공영방송에 대한 허가·통제는 연방 우편·통신 장관이 관장하며, 시청자·청취자들이 내는 요금으로 운영된다. 독일의 공영방송들은 정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방송정책을 세우며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곧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공영방송의 방송정책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번번이 정부의 패배로 결말이 나, 공영방송이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갖게 되었다. 한편 동·서독 분단기에도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을 자유롭게 시청하고 청취함으로써 서독 사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문화와 예술

동·서독으로의 정치적 분단기에도 독일의 문화적 예술적 전통은 동질적이었다.

독일어권 국가들에서 작가나 화가·작곡가·극작가는 동독 여권을 갖고 있든 서독 여권을 갖고 있든 같은 독일인일 따름이었다. 문학·예술에서 '도이치'라는 형용사는 지금도 정치적 국경과 전혀 무관하다. 같은 독일 문화의 전통 속에 있으므로 이를테면 오스트리아인 구스타프 말러도 '독일' 작곡가이고, 스위스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도 '독일' 극작가인 것이다. 그러나 40년간의 분단으로 동·서독 두 지역의 문화생활에 어느 정도의 차이가 불가피하게 생겨났다.

두 지역 모두 독일 전통 문화의 길을 걸었지만,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영향을 보다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던 서독이 더 세계화되었다. 그러나 동독은 놀라울 정도로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하는 한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분단기에 동·서독간에 음악 분야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고 문학·연극에서는 약간 다른 반면 건축과 조형 분야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독일문학의 전통은 8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

훗날까지 큰 영향을 미친 초기 설화문학에는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1200∼10경)와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치팔 Parzival〉(1200∼10경)이 있다. 일반적으로 18세기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를 독일문학의 전성기로 꼽는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요한 고트프리드 폰 헤르더, 프리드리히 실러 등이 이 시기의 주요 작가들이다. 그후의 작가들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아르투르 슈니츨러,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베르톨트 브레히트, 헤르만 헤세 등도 세계 문학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본문 이미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독일의 작가, 철학자

분단 독일에서의 전후문학 역시 중요한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로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야코프 렌츠, 우베 욘존, 지그프리트 렌츠, 안나 제거스, 아르놀트 츠바이크, 크리스타 볼프 등이 있다.

또한 독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와 작곡가들도 많이 배출했다. 바흐 가문, 루트비히 판 베토벤, 요하네스 브람스,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이들에 속한다. 주목할 만한 현대 작곡가로는 한스 베르너 헨체, 고트프리트 폰 아이넴,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등이 있다.

베를린 교향악단, 뮌헨 교향악단, 밤베르크 교향관현악단, 슈투트가르트 실내관현악단 등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단이다. 라이프치히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라이프치히에 있는 장크트토마스 합창단, 테너 성악가 페터 슈라이어 등의 음악적 명성은 세계적으로 높다.

공연예술에서는 뷔르템베르크 주립극장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세계적으로 돋보이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 발레단은 남아프리카 태생의 존 크랑코의 지도하에 세계적인 명망을 얻었으며, 1973년 그가 죽은 후에도 마르시아 하이데의 지도하에서 명성은 계속되었다. 안무가 피나 바우슈의 〈춤의 무대 Tanztheater〉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무용이 부퍼탈에서 시작되었고, 함부르크 발레단은 세계 발레의 활기찬 구심점이 되고 있다.

본문 이미지 슈투트가르트(Stuttgart) 주립 극장

슈투트가르트(Stuttgart) 주립 극장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속한 주립 극장의 모습

뛰어난 시각예술의 전통은 15, 16세기의 알브레히트 뒤러, 대(大)루카스 크라나흐, 홀바인가(家) 등으로부터 막스 베크만, 게오르크 그로츠 등의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과 요제프 보이스, 안젤름 키퍼 등으로 이어진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오늘날의 독일 건축의 많은 부분은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바우하우스 학파의 창작품으로서, 발터 그로피우스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인물들과 관련되어 있다.

장식성에 대한 강한 경멸은 물론 스타일과 기능의 엄밀한 조화와 소재의 내적 미를 고집하는 바우하우스의 이념은 현대 도시 건축에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1919∼33) 시대에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서독이 자신의 장기를 영화에서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20∼30년대 초에 독일 영화를 이끌었던 프리츠 랑, 에른스트 루비치, F. W. 무르나우, G. W. 파프스트 등의 거장들에 이어, 제3제국(나치 독일) 치하에서 깊이 빨려 들어간 진부함의 수렁에서 독일 영화를 구해낼 만한 거장이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으며, 1917∼45년에 독일 영화의 제작 중심지로서 포츠담 교외의 바벨스베르크에 있었던 거대한 영화제작소인 우니베르줌영화사(UFA)도 동·서독의 분단으로 동독에 떨어졌다.

마침내 1960년대 후반에 알렉산더 클루게, 폴커 슐뢴도르프,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베르너 헤르초크, 빔 벤더스와 같은 젊은 영화 감독·제작자들이 나타나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함으로써 독일에 영화 강국이라는 명성을 다시 안겨주기 시작했다. 독일의 겉과 속을 조망하는 열기를 낳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비상한 작품 세계는 그가 1982년 요절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한편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마리안네 로젠바움, 헬마 잔더스 브람스 등의 여성 감독이 현대 독일 영화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박물관은 약 2,000개에 이르며, 전시품들은 회화·조각이나 고고학·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소장품에서부터 슈투트가르트의 카드놀이 박물관에 있는 카드와 같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주목할 만한 박물관·미술관으로는 베를린의 프로이센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것으로 슈프레 강의 '박물관 섬'에 있으며 엄청난 양의 고전·중동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을 비롯해, 알테스('옛') 박물관, 노이에스('새') 박물관, 국립미술관, 보데 박물관 등이 있다.

또한 드레스덴의 츠빙거 박물관 및 고트프리트 젬퍼가 설립한 회화미술관, 뮌헨의 알테('옛') 피나코테크, 노이에('새') 피나코테크 및 독일박물관, 뉘른베르크의 게르만 국립박물관, 마인츠의 로마게르만 중앙박물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젠켄베르크 자연과학박물관, 슈투트가르트의 주립 화랑이 유명하다.

독일에서 레크리에이션은 하나의 산업을 이룰 정도는 아니더라도 독일인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전통적인 종교 축제일과 공휴일의 휴무, 40시간이 채 안되는 주당 평균 노동시간, 3∼6주의 유급 휴가 등으로 독일인들은 서유럽의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많은 여가를 누린다. 레크리에이션의 형태에서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공존하는 특징을 보인다. 놀랍게도 고도로 공업화된 국가임에도 로마 가톨릭교 지역과 개신교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옛 축제나 풍습이 지금도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남부지역의 '파싱'과 라인란트의 '카르네발'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부활절·성탄절·오순절(모두 국가공휴일임)과 로마 가톨릭교 지역의 성체성혈대축일·성모승천대축일 등의 종교 축제일 외에도, 지역마다 포도주 축제, 맥주 축제, 추수 축제, 사냥 축제와 같은 오랜 역사를 지닌 민속제가 널리 행해진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매년 9월에 열리는 뮌헨의 '10월 축제'이다. 이처럼 전통에 충실한 한편으로 독일인들은 보다 현대적인 레크리에이션과 오락, 휴식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고, 여행이 으뜸가는 소일거리로 등장했다.

적어도 연중 한 번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성인의 절반을 넘고, 연중 몇 차례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아주 많다. 노인들은 공휴일 여행 외에도 흔히 휴식과 건강 회복을 위해 온천으로 요양을 떠난다.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독일인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 서독 지역에서는 여가 활동비가 가구당 소득의 약 1/5에 이르며, 정부와 학교·교회·기업이 여가 선용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하고 자극을 준다.

현재 여가 활동은 교육·직업훈련·주택·건강보험·장애보험·연금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 정책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

독일과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 독일의 공식 외교관계는 1883년 11월 26일 한·독수호조약 13관(款)과 선후속약(善後續約)의 체결로 시작되었다.

1880년대 초반은 조선이 쇄국정책과 금압정책에서 탈피해 서구 열강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시기로, 독일은 정치적인 이해보다는 경제적인 필요에 따라 조선과 유대관계를 쌓아나갔다. 이 무렵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이홍장의 추천으로 해관(海關) 및 외교 고문으로 등용되었고, 1896년 4월에는 독일무역상사 세창양행이 금성·당현의 광산채굴권을 허가받았으며, 1898년 9월에는 관립덕어학교(官立德語學校)가 설립되어 J. 볼리안이 교사로 초빙되었다.

본문 이미지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f) 독일의 외교관으로, 조선 외교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한·독 관계의 결속을 확인하기 위해서 1898년 7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친동생 하인리히 대공이 조선을 방문했는데, 그는 구한말의 외교사에 있어서 가장 큰 국빈이었다. 한·독수호조약 체결 이후 점차 발전한 한·독 관계는 을사보호조약(1905)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고 독일공사관이 폐쇄되면서 공식적으로는 단절되었다.

그러나 비공식 교류는 계속 이어져 1927년 영친왕이 유럽 여행길에 힌덴부르크 원수를 접견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고 적지 않은 한국 학생들이 유학차 독일로 건너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서 냉전은 독일과 한국 모두에게 민족 분단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1948년 남·북한이 차례로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분단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독일도 이념이 서로 다른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분단되었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의 통일이 선포되기 이전의 한·독 관계는 분단 국가가 가지는 국제 정치적인 조건과 제약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1949년 11월 동독과 북한이, 1955년 12월 서독과 남한이 각각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경제 및 기술협력에 관한 협정〉·〈한·독 경제 회담에 관한 의정서〉 등의 채택 과정에서 진전되어 온 서독과 한국의 우호관계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독 방문으로 이어졌고, 1967년 3월에는 서독의 뤼브케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로나 그로부터 4개월이 조금 지난 7월 8일 중앙정보부가 흔히 '동백림(東白林) 사건'으로 불리는 이른바 '동베를린 거점 북한 대남공작단 사건'을 발표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어갔다.

이 사건의 처리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의 안보 우선주의와 서독 정부의 인권 중시 태도가 충돌해 양국 사이에 상당한 긴장과 반목이 조성되었으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악화되었다. 양국간에 의견차가 쉽사리 좁혀지지 않자 서독은 정경 분리의 원칙에 입각하여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1970년 2월 신태환 통일원 장관이 독일을 방문해 동·서독의 분단상과 통일 노력을 시찰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독일의 외무장관 쉘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독 문화협정〉과 〈부산직업학교 설립에 관한 약정서〉에 서명했다. 1972년 11월에는 〈한·독 비자면제협정〉과 〈한·독 재정원조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어 독일이 한국에 3,500만 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했다.

한편 남·북한간 외교전은 남·북한 국가 원수의 독일 방문에서도 나타나,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동독 방문(1984. 5. 29∼6. 2)에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각각 1986년, 1989년에 서독을 공식 방문했다.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참석해 50년 만의 여야간 정권교체를 축하했으며, 같은 해 9월 15일에는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이 방한해 김대중 대통령과 한·독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관계가 '최상의 협력 관계'임을 확인하는 한편, 한국 정부의 개혁 추진과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독일의 지원과 협력을 다짐했다.

1996년 현재 독일의 대한수출은 72억 3,918만 달러, 수입은 47억 516만 달러이며, 1960년대 초반부터 취업차 건너간 광부·간호원을 비롯한 재독 교민과 체류자의 수는 1997년 현재 각각 17,970명과 12,671명이다.

한·독 관계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매우 이채롭다. 일찍이 초대 주독 명예영사를 지냈으며 홍콩에 상사를 설립하고 1884년 제물포에 세창양행을 설치한 E. 마이어는, 상사를 통하여 한국 물품을 수집해 1889년 함부르크 산업박람회에 전시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이름이 된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분도회 총원장 N. 베버의 저서명이며, 같은 분도회 선교사로 1908∼29년 한국에 머물렀던 A. 에카르트는 〈한국어 문법 Koreanische Konversationsgrammatik〉·〈한국 미술사 Geschichte der koreanische Kunst〉·〈한국의 음악 Koreanische Musik〉 등을 펴내고 뮌헨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침으로써 독일 내 한국학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

일제강점기에 독일은 비자 없이도 유학할 수 있는 나라였으므로 많은 한국 학생들이 독일에 체류하며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들은 대개 자연과학·철학·예술 등을 전공했기 때문에 우리 문화나 역사를 본격적으로 소개할 수는 없었으나, 유학 기간 동안의 생활 속에서 한국 문화의 면면을 전해주었음은 충분히 짐작된다. 이의경의 경우는 특기할 만한데, 1928년 뮌헨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이내 문필활동에 들어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다수의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만년에는 한학과 한국 문학을 강의하며 바우어 같은 우수한 동양학자들을 육성하기도 했다.

1946년 출판된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Der Yalu Fliesst〉는 지금도 독일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독일 문단의 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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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즐겨보는 드라마, 인터넷 검색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신경쓰다가 티스토리를 자주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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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 신청은 비밀 댓글로만 받겠습니다.

 

신청 양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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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이메일 주소를 작성해주시고 비밀 댓글설정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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